투병생활이 점점 길어지면서 육체적인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정신과를 가게 되었는데 ,정신과에 가면 의사 선생님께서 내 말을 듣고 상담해 주시면서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도와주실 줄 알았다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지금까지 내 상황과 마음상태에 대해서 쭉 털어놓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내 말을 끊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마음이 괴롭고 우울하다는 말이죠? 약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매일 빠지지 말고 드세요" 그렇게 나의 정신과 첫 진료는 끝났다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뒤에 다른 환자도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영화 속에서 보던 정신과상담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원래 '정신과는 이런 곳인가? 아니면 이 선생님만 그런 것인가? ' 궁금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른 정신과들도 다녀봤는데 딱히 다른 차이는 없었다 그냥 약처방해 주는 게 다였다 상담을 받고 싶다면 정신과보다는 정신상담센터에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약을 먹어도 그렇다 할 효과도 없었고 오히려 무릎통증이 심해져서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우울증이 있은데도 약을 먹을 수도 없는 몸뚱아리라니 '신께서는 나보고 그냥 죽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에 절망적이었다
몸상태도 딱히 나아지지 않고 치료의지도 점점 약해져서 계속하던 운동도 하지 않고,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면서 자포자기 상태로 보냈던 것 같다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나를 한 절에 데리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교신자였던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답답해서 집 근처 절들을 돌아다니면서 스님들께 이런 상황에 대해 고충을 상담해 온 것이었다 그러다 그중 한 스님께서 엄마의 말을 듣고 나를 절로 한번 데려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랑 함께 스님을 만나 뵙기 위해 절에 찾아갔다 처음 만나게 된 스님은 귀가 부처님처럼 크셨고 인자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스님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로만 듣던 하루구나 '
스님께서는 엄마와 나를 한 조용한 정자로 데리고 가더니 뜨거운 차를 따라 주셨다
"그래 하루야 뭐가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 같니?"
"스님 저는 전생에 아마 큰 죄를 지은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현대의학에서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이렇게 고통받지 않았을 거예요 치료를 해도 몸상태가 나아지지도 않고 우울증 약도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께서는 제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고통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게 틀림없어요"
스님께서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세상에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단다 일단 100일 기도부터 해보는 게 어떻겠니? 매일 절에 와서 108배를 하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거야 그렇게 마음수행을 하는 거지"
"100일 기도를 하면 제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그건 하루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일단 아무리 현실이 절망적이더라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 안 돼 다시 한번 마음잡고 노력해 보자 이번에는 스님도 같이 도와줄게"
21살 무더웠던 여름. 그렇게 나는 마음수행을 시작했다
100일 동안 매일 절에 가서 108배와 기도를 드린 후 스님과 인생과 불교철학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렇게 스님과 자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스님과 여러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허상에 빠져있었는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스님과는 종교관이 달라서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게 됐지만 (스님께서는 부처님을 신으로 바라보시고 나는 부처님을 스승(인간) 즉 불교를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으로 본다) 내가 수행자의 길을 걷도록 해주신 감사한 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 그래서 내가 마음수행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공부는 한번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계속 수행하지 않는다면 다시 원래의 마음상태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나 역시도 그동안 수행을 게을리했더니 원래의 부정적인 마음상태로 돌아가 괴로워했다 이제 취직도 했겠다 다시 마음잡고 꾸준히 정진해야겠다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불교라네
-서암스님 법문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