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회사는 사람을 불평쟁이로 만든다. 회사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사실 3천만 직장인 모두가 얻은 깨달음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놀랄만 했다. 원체 불평을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직장을 얻기까지 꼬박 5년.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에 성공하고, 심지어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마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도 넘지 못했던 취준의 벽. 그런 처지에서조차 낙천적인 마인드로 일관했더랬다.
「하아아아. 왜 아직 수요일 밖에 안 됐죠...?」
그런데 회사는 이런 낙천꾼을 손쉽게 공략했다. 반 십 년 동안의 취준 생활에도 정복되지 않았던 낙천성은, 딱 반 년만의 회사생활에 완벽히 정복되었다.
나는 요일마다 불평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월요일에는 아직 월요일 밖에 안 돼서,
화요일에는 아직 화요일 밖에 안 돼서,
수요일에는 아직 수요일 밖에 안 돼서.
요일은 매일 바뀌었지만, 내 불평은 변하지 않았다.
「오, 난 수요일 좋던데!」
왜 아직 수요일 밖에 안 됐냐며 툴툴대는 내게 동기누나가 답한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신치고는 아주 발랄하다.
애당초 독특한 사람이긴 했다. 술에 취하면 외국어 단어를 외우질 않나, 삼청동 보세샵에서나 팔 법한 보헤미안 룩을 하고 출근을 하질 않나.
「왜요?」
그래, 신기한 사람이 또 신기한 얘기를 하는구나. 이것도 나름 재밌네. 라고 생각하며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일이 바빴는지, 누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늦은 오후가 지나서야 뜬 사내 메신저 팝업.
「수요일을 반올림해봐. 그럼 주말이잖아!」
누나의 대답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답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참나, 사사오입도 아니고 반올림을 왜 해. 이건 무슨 소리야.
수요일을 반올림한다는 발상은 들은 적도 본 적도 한 적도 없다. 충격적일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웃기기는 했다.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워킹데이가 월-화-수-목-금 5일이니까, 수요일이면 분명 절반은 됐지. 반올림을 하면 주말이지.
흐음.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점점 묘하게 빠져든다. 곰곰히 곱씹어볼수록 짙은 풍미가 베어져나오는 것 같다.
잠깐만.
어, 진짜 그렇긴 하네.
.
.
.
어?
어라?
어쩌면 큰 의미 없이 던졌을 동기 누나의 이 말은, 내 회사 생활을 아예 거꾸로 바꿔놓았다.
수요일은 더 이상 힘든 날이 아니었다. 반올림하면 주말이니까. 거의 주말이니까. 이제 쉬니까.
비슷한 이유로, 목요일은 수요일 보다도 덜 힘든 요일이 되었다. 바로 내일이면 사실상 주말이니까.
금요일은 말할 것도 없다. 잠깐만 있으면 퇴근인데. 이 정도면 찐주말이지 뭐.
하다 하다 이젠 월요일도 화요일도 나아졌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반올림 해서 주말이니까.
「와, 진짜 그러네요. 미쳤다. 존경스럽네요 누나.」
수요일도 거의 주말이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여넘기자, 심신의 고단함이 덜어졌다. 수요일을 반올림했을 뿐인데, 힘듦이 훨씬 덜해졌다.
충실한 노비 마인드인지도 모르겠다. 탐욕스러운 고용주라면 아주 흡족해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쉬는 날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그닥 힘들어하지도 않으면서 성실히 일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손해본 것은 없었다. 사측에 패배한 노동자라는 느낌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좋아졌으니까. 내 인생이 훨씬 나아졌으니까.
놀라운 해골물이었다. 마음먹기만으로 회사에서의 삶이 달라졌다. 현실이 바꼈다. 일체유심조였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수요일을 반올림할 수 있다면, 같은 처지에 있는 주5일제 노예들이 어쩌면 더 여유로운 삶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다 진짜」
「와, 쩐다」
「와」
또 다시 대답이 없는 누나에게, 연이어 감탄을 보낸다.
원효대사 해골물
樂以忘憂. <述而>
즐거움으로 힘듦을 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