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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Jun 21. 2024

맥도날드 감자튀김 판매 중단 사태에 부쳐

42. 프렌치 프라이

맥도날드에서 공지를 띄웠다.


"일시적으로 후렌치 후라이를 제공해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자 수급이 어려운 모양이다. 당장 전국의 빅맥 러버들이 난리가 났다.


감자튀김이 없는 햄버거 세트는 영 모양이 나지 않는다. 노르스름하게 잘 튀겨진 감자가 빨간 봉투에 담겨 쟁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패스트푸드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햄버거 세트 뿐이랴. 심지어는 '감자튀김 먹으러 맥도날드 가는데'라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온다.


내 생각도 그 어스름에 닿는다. 어디선가 "아, 난 진짜 감튀 먹으러 맥도날드 가는 건데"하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다.

첫 연애 이야기다.



사람은 다름에 끌린다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 경험이 없는 나, 오만 경험이 있는 너.

공부를 하는 나, 그림을 그리는 너.

고지식한 나, 자유로운 너.

이런 나, 저런 너.


빛나는 너,

빛나는 너.



어느 날인가 함께 길을 걸었다. 순찰을 돌다가 잠시 휴식 중인지, 번화가 편의점 앞에 경찰차가 정차해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 아저씨 둘이 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뭐 먹으러 갈까?"


라고 말을 걸었지만, 들어줄 사람이 벌써 옆에 없었다. 함께 걷던 그 사람이 어느새 호다닥 경찰차로 뛰어가 뒷문을 열고 냉큼 쏙 타버렸기 때문이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잠시 뒤, 조수석에 앉아있던 경찰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고, 차에서 내린 그녀는 다시 으로 돌아왔다.


아, 아는 사람이구나.


그녀에게 물었다.


"오, 뭐야? 아는 사람이야? 누구야?"


아는 사이 중에서도 꽤 친한 사이였을 거다. 차창 너머 희미한 실루엣만으로 그 사람을 알아볼 만큼. 근무중일 게 뻔한 경찰차 뒷문을 벌컥 열고 올라탈 만큼.


상식적인 추측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몸이 먼저 나간 거겠지. 이 외에 별달리 떠올릴만한 가설이 없었다.


"아니? 나 모르는 사람인데?"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에? 그럼 뭐야?"


"뭐가?"


"아니, 방금 경찰차 탔잖아."


그게 뭐 그렇게 대수냐는 듯이, 해맑은 대답이 이어졌다.


"응, 탔지! 경찰차 한번 타보고 싶었어!"


다른 이유는 없었다.


"뭐? 그냥?"


"응! 그냥! 하고 싶은데 이유가 어딨어!"


이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 넘는. 내 상식 안에서 설명될 수 없는.


"그거 알아? 경찰차는 뒷문에 안쪽에서 여는 손잡이가 없다? 범죄자들이 열고 도망칠까봐 안에서는 문을 못 연대!"


황당해 하는 내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여자친구였다.



때로는 버거울만큼 생소했지만, 덕분에 새로운 경험이 빼곡했다. 그 중 하나가 감자튀김이었다.


그간 감자튀김은 반찬이었다. 햄버거 먹을 때, 케찹 찍어서 같이 먹는 거. 그게 다였다.


녀에겐 아니었다. 프렌치 프라이는 그 자체로 요리였다. 메인 디쉬였다.


어떤 음식보다 감자튀김을 좋아했다. 정확히 맥도날드 감튀. 다른 메뉴가 아니라 감자튀김이어야 했고, 다른 브랜드가 아니라 맥도날드여야 했다.


"감자튀김 라지 하나요."


키오스크가 없던 시절. 가게에 들어가 감튀를 하나 시키면,


"네? 감자튀김 하나만요? 다른 건 없으시고요?"


하루에도 수많은 주문을 받았을 알바생이 생소한 주문에 당황해서 되묻고,


"네, 감자튀김만요. 아, 소금 안 친 걸로 주세요. 케첩은 안 주셔도 돼요."


그녀는 능숙하게 커스터마이징 된 오더를 마쳤다.



불편한 맥도날드 의자에 마주 앉아 쟁반에 감자튀김만을 쏟아부어 먹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 뿐만이 아니라 꽤나 적지 않은 내 처음은 그 사람 몫이었지만.


"왜 케찹 안 찍어 먹어?"


"감자 맛이 안 나잖아. 소금맛 나는 것도 싫어. 그냥 감자가 기름에 바싹 튀겨진 이 맛이 좋아."


칙칙한 쟁반 위에 얇은 코팅지를 하나 깔고 감자튀김이 소복하다. 감자가 머금고 있던 기름이 베어나와 종이 여기 저기가 투명하도록 맨들거린다.


"난 그냥 맥도날드 와서 이것만 시켜. 어떨 땐 막 두 개 세 개 시켜서 이만큼 쌓아두고 막 먹는다?"


소금기 하나 없이 뽀얗게 튀겨진 막대 감자. 손가락 두개로 살짝 집어 입에 넣는다. 토마토 케첩 맛도, 짠 맛도 없다. 그저 기름 품은 감자향이 그득하다.


감도 예술이다. 겉은 한껏 바삭한데 살짝만 씹어도 포슬포슬해진다.


이 위대한 음식을 왜 미처 몰라 뵀던가.


"그냥 그렇게 감튀만 먹으면서 사람 구경 하는 거야, 크로키하면서. 햄버거 가게가 이 사람 저 사람 진짜 다 오거든. 그림 그리기 좋아.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고."


사이드 메뉴였던 감튀. 이제는 충분한 주연이었다.



으레 그렇듯, 나의 첫 연애도 오래지 않았다. 다름에 끌렸듯이 다름에 밀렸을 거다. 그 나이대 이별에는 별 이유가 필요치 않지만.


참 짙게도 슬펐더랬다. 첫 연애였으니, 첫 이별이었다.


아팠지만, 많이 배웠다. 새로운 세상 열렸다.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세상은 내가 봐왔던 세상과 얼마나 다른 빛깔이던지. 감사했다.


이별 후, 혼자 맥도날드에 가서 감튀를 시켜먹게 됐다. 마치 그 사람처럼.


꽤나 오랫동안 그러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어정쩡한 공강시간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서는 첫 차를 기다리면서, 모임을 다니면서는 약속 시간 사이 애매한 틈에. 맥도널드에서 감튀 먹기 딱 좋은 때가 참 많았다.


구태여 그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 때마다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추억하지는 않았으되, 추억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공강시간도,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도, 퐁당퐁당 이어지는 모임들도 없다. 그럴 시간도, 체력도 없다. 한껏 평범한 직장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햄버거집에서 감튀 하나만 시킬 짬이 사라졌다는 거다.


자연스레 감자튀김은 다시 사이드메뉴가 되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감튀는 그냥 햄버거 세트에 껴있는 조연이 되었다.


물론 다 핑계일 수 있다. 결국 사람 탓일 거다. 아직 사람과 함께였다면, 뺀질나게 맥도날드를 드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판매 중단 사태를 꽤나 크게 체감했을 거다.


다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감튀 하나 먹겠다며 맥도날드를 갔던 일은 요새 없다.


맥도날드에서 감튀를 못 먹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점심으로 프렌치 프라이까지 햄버거 세트를 먹고 싶다면, 그냥 버거킹을 가면 일이다. 롯데리아를 가도 좋고, 맘스터치를 가도 상관 없다.


맥도날드는 대체 불가능한 곳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렇다.



"웬 햄버거에요?"


공교롭게, 아내가 햄버거를 들고 퇴근했다.


"오늘 간식이라면서 회사에서 주더라고요. 남편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햄버거 좋아하잖아요."


당연하게도 감자튀김이 함께다.


"고마워요 아내! 같이 먹게 씻고 올래요?"


맥도날드에서 후렌치 후라이를 일시 중단한다는 공지를 올려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첫 연애는 내게서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첫 사랑은 내게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지금 내 곁에는 회사에서 주는 간식만 보아도 남편을 생각해주는 아내가 있는 까닭이다.


"네, 얼른 씻고 나올게요. 쫌만 기다려요 남편!"


아내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포장지 사이로 빼꼼 삐져나온 감자 튀김이 보인다. 그 가벼운 유혹을 참지 못하고 낼름 하나를 집어 먹는다. 짭쪼롬한 맛. 튀긴 지 오래 되어 벌써 눅눅한 식감. 슬쩍 풍기는 케이준 냄새. 어느 것 하나 취향에 맞지 않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쏴아아-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물줄기 아래에선 인기척이 느껴진다.


지금 저기 있는 저 사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인가보다. 맥도날드에는 감자튀김이 없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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