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ing Bites 2. 선한 영향력 사회공헌마케팅 (02)
요새도 그렇지만 연말이면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 ‘A기업 연말 불우이웃 돕기 활동, B지역에 연탄과 자선금 기부’, ‘C기업 성탄절 앞두고 어린이 초대행사, 자선 콘서트 및 장학금 전달식’, ‘D프로야구단, 선수단 전원 독거노인 연탄배달... 땀은 송글 사랑은 듬뿍’.
아마 저 기사들 중에 한두 가지는 본적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일이다. 비록 연말에 ‘기사’나는 걸 노려 한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불우한 주변 이웃들이 도움 받았다. 그런 점에서 마케팅이든 진정성 있는 행사든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사실 이런 자선이나 기부 활동은 사회공헌의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1세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좋은 활동이긴 하지만, 정작 기업엔 큰 관련성은 없어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마케팅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대의마케팅’(Cause marketing), ‘공익연계 마케팅’(CRM, Cause Related Marketing), CSV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 관련도도 더 높고 훨씬 진화된 마케팅 모델.
오늘은 이 사회공헌 마케팅 프로그램의 발달 과정을 알아본다. 이 중에서 내 기업에 맞는 사회공헌 모델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세대 자선기부 모델은 가장 흔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별다른 이슈 없이 주변에서 받아들이는 모델이다. 앞서 예를 든 김장김치와 연탄 배달 등의 물품 기부 행사는 물론, 보육원이나 보호단체·시설 등을 대상으로 한 자선바자회, 장학금, 수재의연금 등 기금 전달 등의 활동이 모두 여기 해당된다.
매우 훌륭한 활동이지만 기업이 하는 활동으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의도를 떠나, 기업의 가장 큰 본래의 목적은 이윤 추구. 사회공헌 활동 또한 기업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마케팅 활동이라 볼 때, 단순한 자선기부는 기업이 어떤 걸 얻고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는 해당 자선기부 활동이 기업 속성과 별로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마케팅은 인지도나 선호도 제고를 목적으로 펼치는 브랜드와 제품 홍보 활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공헌 마케팅을 비롯해, 어떠한 기업 활동도 기업 브랜드나 제품이 빠져있다면 그걸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라 부르긴 어렵다. 예를 들어 신제품 마케팅인데 신제품이 빠져 있다면 그걸 신제품 마케팅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자선이나 기부는 매우 훌륭한 사회공헌 활동이다. 그 순수한 의지나 의도를 왜곡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기업에서 전개한다면 그 또한 기업 본연의 속성과 관련되어 있어야 장기적으로 진정성을 갖고 추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생각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가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런 모기업의 ‘업의 속성’과의 연관도일 것이다. 프로그램은 좋은데, 이게 우리 회사 브랜드나 제품과 맞나, 이걸 하면 내부 임직원의 시각은 어떨까, 앞으로 계속 추진할 수 있는 내부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등의 현실적인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보완하고 나선 것이 바로 CR이나 CRM 등 사회공헌을 활용한 ‘마케팅’ 개념이다. 이는 2단계, CSR(Corporate Social Respon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시대에 들어가면서 더욱 주목 받았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1세대에서 단순 자선, 기부를 했다면 2세대에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보다 전략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속가능성’이란 1화에서 설명했듯,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환경, 사회(사회공헌), 지배구조(윤리) 등 3가지 측면에서 건강한 토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에서 ‘ISO26000’을 통해 명문 규정함으로써 기업 경영의 국제적인 표준으로까지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CSR 모델에서 중요한 건 사회공헌을 기업이 영속하기 위한 ‘책임’이자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자신이 기반을 둔 지역사회나 국가에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영속해 나가기란 어렵다. 그 측면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반드시 필요한 기업 활동으로 규정한 것인데, 이에 따라 사회공헌을 마케팅 시각에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보다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업 사회공헌을 보다 ‘마케팅’ 측면으로 강화한 것은 2가지 개념이 있다. CRM(Cause Related Marketing, 공익연계마케팅)과 CR(Community Relations, 지역관계활동) 등 2가지인데, 모두 사회적 이슈를 기업의 속성에 연계해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담고 있다.
이 개념들은 CSR이 등장하고 나서야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주로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많은 마케팅 활동이 전개되어 왔다. 다만, ‘CSR’로 사회공헌이 보다 핵심적인 기업 경영활동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마케팅 기법으로 보면 무방할 것 같다.
CRM은 CM(Cause Marketing, 대의마케팅)으로도 많이 불린다. 그 핵심은 사회 핵심이슈에 기업의 제품이나 속성을 연계해 마케팅 홛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품 하나를 사면 똑같은 금액을 적립해 기부하거나, 기업의 사업영역에서 환경보호, 지역사회 지원, 소외계층지지 등의 활동을 펼치는 것이 모두 여기 해당한다.
신발 브랜드 ‘탐스’(Toms)는 이 공익마케팅이 아예 기업의 본질을 이루는 사례다. 신발 하나를 사면 똑같은 신발 하나를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사업의 골자.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신발도 사고 공익 활동에도 동참하는 기분 좋은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도 사례는 많다. 그중 하나로, CJ제일제당은 2012년, 자사 생수인 ‘미네워터’를 대상으로 공익마케팅을 전개했다. 편의점 체인인 보광훼미리마트와 손잡고, 미네워터를 살 때 추가 100원을 결제하면 CJ제일제당과 보광훼미리마트가 똑같이 100원씩 더 기부해 총 300원의 기금을 만드는 것. 이렇게 모인 돈은 한국유니세프를 통해 깨끗한 물이 절실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데 사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이처럼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기업이 그만큼 똑같은 돈을 기부해 기금을 조성하는 걸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소 금액이 올라가도 자선에 동참할 수 있어 좋고,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와 연대해 함께 어떤 활동을 전개하면서 ‘유대감’도 얻을 수 있으니 마케팅 측면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선진 서구국가에선 실제 이를 통해 제품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도 누렸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점차 접어들면서 단순 개별이익보다는 ‘공공이익’을 많이 강조하는데 이럴 때 추천할 만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훌륭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CRM과 자선기부의 가장 큰 차이는 기업 관련도다. 연탄배달이나 김장김치 기부 등은 해당기업이 아니라면 사실 기업과의 연계도는 거의 없다. 좋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우리 회사가 아니어도 다른 기업이나 일반 소비자가 진행한다고 해도 비슷비슷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사회공헌 활동도 당연히 기업의 가치를 대내외 전달하는 핵심 마케팅 프로그램이다. 그런 면에서 기업의 핵심속성이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문이다.
만약 자선기부 활동을 꼭 해야 한다면, 실무자 입장에선 살짝 프로그램을 틀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기업이면 청소년 보호시설 등에 컴퓨터를 기증하는데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교육까지 해줘 연계 포인트를 하나 더 만든다. 김치 제조 기업이라면 저소득층 김치 기부와 함께 김장체험, ‘김치 1개 사면 1개 기부’ 등의 공익마케팅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모두 자선기부 활동을 기업 제품과 연계시켜 공익마케팅으로 바꾸는 방법들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최근 모델이면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이다. CSV는 지난 2011년,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가 주장하고 나선 개념이다. 사회공헌 활동이 단순 기업 커뮤니케이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지역사회와 공동 비즈니스 효과까지 누리게 만드는 걸 말한다. 사회공헌의 핵심목적인 사회 이슈도 해결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효과도 잡는 경우.
예를 들어보자.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는 IT 업계 구인난과 동시에 청년 실업 문제에 함께 주목했다. 그 결과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Cisco Networking Academy)라는 IT 교육기관을 전세계 세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스코는 수만 명에 달하는 교육생을 배출했고, 우수하게 교육된 인력은 취업에 성공해 지역사회 새로운 경제원이 되었다. 시스코 또한 졸업생들이 자사 장비를 구매하거나, 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부가 이익을 거두는 등 기업 본연의 ‘이윤 추구’에도 성공했다. 자사의 핵심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 기업과 사회가 공생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전기 발전과정에 나오는 온배수를 주변 감귤비닐하우스와 수산물양식장에 제공했다. 감귤농가는 겨울철 난방비가 부담이었고, 수산물양식장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문제였다.
가만 두면 온배수는 인근 하천 수온만 올려 환경문제까지 대두되었을 것이다. 이를 문제 해결 범위를 기업을 넘어 인근 농어가까지 확장 실행한 결과, 감귤농가는 난방비 87% 감소, 수산물 양식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 우수한 비즈니스 효과를 거뒀다. 비즈니스를 만든 것까지는 아니지만, 3개 협의체 모두 고유 비즈니스에 큰 이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앞서 1화에서 예를 든 ‘라이브 에이드’ 또한 우수한 CSV 모델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 영미 굴지의 뮤지션들과 아프리카의 기아 빈곤 이슈가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기에 음악을 사랑하는 전세계 팬들이 지원군으로 합세해, 80년대 초에도 수억 명이 관람하고 수십억 명이 영향을 받는 등 굴지의 공익 마케팅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CSV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런 자생적 캠페인 모델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장 사회공헌 실무자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업의 속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사 브랜드나 제품을 어떻게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녹여 낼 것이냐’ 하는 것.
일반 사회공헌 시설이나 재단은 목표가 비교적 분명하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미혼모, 청소년이나 소년가장 돕기 등 그 대상과 활동이 명쾌하게 규정돼 있다.
반면, 기업 사회공헌은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은 잘 알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사회공헌 마케팅 프로그램은 그 해답이 어렵다. 기업 혼자만의 마케팅 프로그램이 아니고, 사회이슈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공감 받을 만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면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갈수록 기업 경영이 고도화되면서, 사회공헌 또한 기업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 다른 쪽에서는 사회공헌은 기업이 ‘진정성’을 갖고 ‘사회이슈’에 더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 이해하며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하길 기대한다. 이 2개의 집단, 소속 기업과 사회의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창의력까지 갖춘 프로그램을 만들기란 쉬운 작업은 아니다.
이에 대해, 다음 호부터 우선 가능한 사회공헌 프로그램부터 알아보려 한다. 아울러, 직접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하면 될지 그 주안점도 점차 다뤄보겠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기업 담당자 뿐 아니라, 우수한 프로그램일 경우 그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되기도 한다. 기업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가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