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갑자기 뜬금없이 웬 공주 이야기냐고요?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프로젝트 구텐베르(project gutenberg)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려 7만개가 넘는 전자책을 보유하고 있는 이 사이트는 저작권이 만료된 책들이 가득한 보물창고입니다.
아마도 작년 이 맘때쯤 우연히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저는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찾아 헤매는 일에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키워드는 주로 요리, 신화, 전설, 요정, 여성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고요.
'여성' 키워드를 검색하여 초기 페미니즘 서적을 비롯하여 육아법에 관한 책 등 다양한 책들을 엿보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100년 전의 '공주'이야기는 어땠을까?
우리가 흔히 아는 '옛날' 공주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어릴 적 디즈니 버전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공주'의 이미지가 실린 그림책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그 공주들은 하나같이 어여쁘고, 순수하며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졌죠.
좀 더 크고 나서는 '미녀와 야수'라던가 '인어공주'같은 작품들을 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주들은 점점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띄어갔지만 왕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에 골인하는 엔딩만큼은 같았죠.
그러다 '뮬란'처럼 남장을 하고 싸우는 캐릭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엄밀히 따지자면 뮬란은 공주가 아닙니다만 일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히로인으므로 넣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단순히 '공주'의 지위를 넘어서 차기 족장으로서의 리더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모아나'와 같은 캐릭터도 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공주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갔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쯤 쓰여진 이야기에 나오는 공주 중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princess' 혹은 'queen'등의 키워드로 검색하여 프린세스의 'p'자만 나와도 클릭하여 모조리 읽어 내려갔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옛날 이야기 속의 공주들은 하나같이 어리고 예쁘고 착하며 수동적이었습니다. 운명을 개척하기 보다는 운명에 순응하며, 나이가 차면 남자들로부터 구혼을 받는 입장이었죠. 그런 서사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시대상이 그러했고, 왕의 딸이라는 신분상 자유롭게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있었을테니 작가들 입장에서 공주의 모험담을 상상하기란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찾은 이야기 중에는 심지어 왕과 왕비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 대중에게 공개하던 시대에 살았던 작가가 쓴 이야기도 있었으니까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했음에도, 그 속에서 가까스로 특색있는 공주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원작 그대로도 매력적인 공주가 있는가 하면 시작은 참신했으나 시대상의 한계 때문인지 시들시들하게 끝나는 공주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을 연재하는 코너가 없기도 하거니와 저작권이 만료되었다고는 하나 직접 창작한 글이 아니라 번역한 글을 올려도 될지 고민이 되었으나 번역은 단순히 A언어를 B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텍스트를 새로 쓰는, 이른바 '제 2의 창작'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과감히 저의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원본을 거의 그대로 번역한 것도 있고 반 이상을 새로 쓴 것도 있습니다. 전문 번역가도, 문학가도 아닌지라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옛날 이야기 중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공주들을 발굴하겠다는 열정이 듬뿍 들어간 작업물이라는 점은 자부합니다.
당장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글도, 다양한 간접 경험을 선사해주는 생생한 경험담도 아닌 '동화', 그 중에서도 '공주 이야기'가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에는 그 자체에 내재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나 자신을 비춰보고, 때때로 용기와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매거진을 통해 3개 가량의 공주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 문제가 된다면 살포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후에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