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른도로시 Jul 20. 2023

선생님이 일찍 교단을 떠나셨던 이유


 스승의 날 무렵, 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찾고 싶어서였다. 알고 보니 이미 퇴직을 하신 후여서 하마터면 영영 연락이 닿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현직에 계신 교사라면 모르지만 퇴직하신 분과의 직접적인 연락은 원천 봉쇄되어 있다. 개인정보침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근무하셨던 학교의 관계자분께서 선생님께 연락을 해주셨고, 얼마 후 처음 보는 번호가 내 폰 화면에 떴다. 선생님이셨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니??? 어떻게 지내고 있어? 연락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수화기 너머로 선생님의 햇살처럼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랍게도 기억 속 목소리 그대로였다. 밝고 쾌활하며 카랑카랑한. 지난 십수 년간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떠들던 우리는 곧바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선생님 연세 이제 겨우 쉰. 아직 한참은 더 일하실 수 있는 나이다. 빨리 퇴직하신 이유를 여쭤보자 교육 현장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너희 가르칠 때만 해도 연차가 쌓이고 노련해지면 일하는 게 쉬웠어. 요즘은 경험이 쌓이는 것과 별개로 그냥 힘들어. 너희 가르칠 때 하고는 차원이 달라."

선생님은 요즘의 변해버린 교육 환경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어느 직종이든 연차가 쌓이면 노련해지고, 노련해지면 일이 쉬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힘들다고 하셨다. 대체 교육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하루가 멀다 하고 교사들에 관한 비극적인 소식이 들리는 요즘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겨우 스물셋, 젊디 젊은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도 교사 한 명이 몸이 두 개라도 된 듯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기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교육청도, 학교도 어느 누구도 평범한 교사 개인의 편을 들어주는 곳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사들은 맨몸으로 오롯이 손쓸 도리 없는 현장을 감당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교사가 저지른 폭행이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역전이 되더니 이제는 교사가 피해자 위치에 섰다. 다른 점이라면 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처벌을 받지만 범죄를 저지른(성인인 교사에게 저지른 욕설, 폭행, 협박 등도 엄연히 범죄다. 학생, 학부모라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학생 혹은 학부모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를 비롯하여 수많은 어른들이 사람은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심히 의심하던 말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된 사람이 물론 확률로 봐서는 훨씬 더 많겠지만, 반대로 아이를 낳고나서 이전보다 더 돌아버린(?)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교사 괴롭히기에 열중하는 걸까. 그 사악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추측 건데, 아마 그들은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세상 밖으로 나오면 엄연히 독립된 인격체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말이다.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건들린다 싶으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다. 내 자식을 대접해주지 않는 건 곧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교사의 인권을 보호해 줄 장치가 없는 작금의 현실은 그들이 마음 놓고 활개 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기까지 하다. 아예 교사하나쯤 잡아먹으라고 판을 깔아준 셈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체벌이 금지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었으나 그 말이 즉 선생을 때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을 거다. 왜 우리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타인을 나처럼 귀한 존재로 보는 일까지야 어렵더라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일이 그렇게나 힘들 일일까.  




작가의 이전글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