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업그레이드로 지브리 스타일의 사진이 유행하고 있다. 무해하고 편안한 느낌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지브리 스타일이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하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이 작품은 동화 같은 판타지 세계 안에 전쟁과 평화, 사랑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정교함과 섬세함을 모두 갖춘 이 영화는 어린이용 판타지를 넘어 현대 사회의 불안과 미야자키 감독의 반전(反戰) 사상, 사랑이 가지는 힘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소피는 모자 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소녀다. 소피는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마법사 하울의 도움을 받지만 이 때문에 황야의 마녀의 질투를 사게 되어 할머니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다. 소피는 자신이 왜 그런 저주를 받았는지도 모른 채 여정을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여정 안에서 소피는 '움직이는 성'과 그 성에 사는 마법사 '하울'과 '캘시퍼'를 만나게 된다. 하울과 함께 움직이는 성에 살게 된 소피는 점차 하울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정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며 자신의 자아를 되찾아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마법과 환상의 모험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외형, 나이를 넘어 자아를 찾고 타인과 소통하는 인간의 성장을 그리고 있으며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소피는 겉모습이 바뀌는 마법을 통해 진정한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며 하울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책임과 두려움에 갇힌 존재로 그려진다. 두 인물은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외면보다 내면의 성숙함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소피는 젊은 시절에는 자기 존재에 확신이 없었지만 노인의 모습이 되었을 때 오히려 용기 있고 주체적인 존재로 변화한다. 이는 나이와 외형이 곧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또한 소피는 전형적인 수동적 여성 캐릭터에서 능동적인 존재로 탈바꿈하는 주인공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하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하울은 자유롭고 멋진 마법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을 회피하고 책임에서 도망치는 존재이다. 외모에 집착하고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점차 소피와 주변 인물을 통해 진정한 용기와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하울의 변화는 사랑과 유대가 한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보여준다. 그의 성장 서사는 용기란 고통을 감내하고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이처럼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채우는 용기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미장센은 지브리 특유의 자연 친화적인 감성과 공학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움직이는 성"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정체불명의 기계 덩어리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여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성 자체가 하나의 인물처럼 쓰인다. 이것은 하울의 불안정한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OST는 히사이시 조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테마곡 "Merry-Go-Round of Life (인생의 회전목마)"는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서정적이면서도 모험심을 자극하는 이 곡은 영화의 정서를 집약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음악이다.
아쉬운 점은 원작 소설의 방대한 세계관을 영화에 압축하려다 보니 일부 설정은 생략되거나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특히 마법과 전쟁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강인한 여성 주인공,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쟁에 대한 비판, 인간 내면의 치유 등 그의 주요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녹아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표면적으로 마법과 동화 속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반전(反戰) 사상을 담고 있다. 영화 속 국가 간의 이유 없는 전쟁은 무의미한 파괴와 고통만을 남긴다. 마법사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이나 황폐해진 풍경들은 전쟁의 비극을 시각적으로 고발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인간적인 행위인지, 그리고 그 피해는 평범한 사람들과 자연에게까지 미침을 보여준다
영화는 외모와 내면의 괴리,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관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피는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면의 용기와 자존감을 얻는다. 반면,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하울은 내면의 불안정함과 나약함에 시달리며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겉모습은 변할 수 있지만 내면의 선함, 용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변치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상처받은 존재들의 연대와 치유를 그린다. 하울, 소피, 캘시퍼, 황야의 마녀 등 "움직이는 성"에 모인 이들은 각자 나름의 상처와 비밀을 안고 있지만,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돌보며 점차 치유되어 간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서로를 보듬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진실을 찾아가는 소피의 여정은 우리에게 깊은 용기와 위안을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혼돈과 비극 속에서도 사랑, 용기, 희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영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움직이는 성'은 부서지지만 다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부서진 성이 다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 날아오르는 날이 오기를.
오늘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