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든 걸 이기기 전에
사랑을 잘 아는 것 마냥 너무 당찼던 지난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어떤 순간보다 호기롭게, 인생 가장 큰 덕목을 사랑이라 생각한다고, 사랑이 결국 모든 걸 이긴다고 이야기 했었다. 근데 정녕, 아직도 스스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랑’인데…
‘Love wins all’을 듣고 남긴 사적인 단상에 X가 단 댓글,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거예요?”
“어떤 일이든 함께하고 싶은 것,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그 소중함을 잃지 않는 것”, 내가 답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었다. 사실은 상대에게 좀 찔리라고 일부러 ’소중함‘을 강조한 건 굳이 숨기지 않겠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왜들 그리 사랑에 울고불고 웃고 행복하고, 극과극의 감정을 모두 마주하게 되는 걸까?
나는 첫 연애도 꽤나 늦었으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또래들보다 늦게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 누군가를 몰래 좋아했던 순간들은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시작한 연애는 9일 만에 끝났고, 이별의 아픔은 생각보다 컸지만 그것도 결코 사랑은 아니었다.
사랑의 시옷자, LOVE의 L도 모르던 어린 시절,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은 기억이 있다. 솔직히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그런데도 감히 이 책을 언급해보자면)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의 생각과 감정이 생생하고도 당당하게 스쳐지나갔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제목에서 바로 비춰주는 것처럼, 너를 사랑하는 이유를 오목조목 뜯어서 찾아나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철학자와 그들의 명언조차 헷갈려하는 난데, 사랑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긴 과정 속에서 보편적 사랑을 묘사하고 사랑의 본질을 뜯어가며,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답도 정답도 아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에 책이 알려준 사랑에 대해선 대답하질 못하겠다.)
결국 나도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고 단언하기 전에 사랑의 본질을 먼저 살펴봤어야 했다. 명징하게 내릴 수 없는 사랑의 정의...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요?
나의 모든 걸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 곧 "Fall in Love"의 순간이다. 둘 사이에 사랑이라는 웅덩이가 파이더라도 언제, 얼마나 빠지느냐는 개인의 몫이었다. 그렇게 확신이 드는 순간 나는 사랑의 웅덩이로 다이빙을 하게 된다. 그런데 빠지는 게 위에서 아래의 방향성을 가진 것과 꼭 닮아 사랑도 하강곡선을 결코 피할 수 없다. 결국 각자의 슬픔과 아픔, 상처와 흉터 모두 보여주게 될 것이고 이것을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게 사랑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하강곡선을 살펴 이해하고, 그것마저 사랑스럽다면 결국, 두려운 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모든 걸 이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고 단언해야겠다. 이러한 본질적 탐구를 거치고도 여전히 사랑을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사랑이 결국 모든 걸 이긴다는 건 더욱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What is Love?(사랑이란 무엇인가?)”의 물음표에서 “Love is What.(사랑이란 무엇이다)”의 열린 마침표로 이 무한한 생각의 창을 닫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