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인 노력
마음 한편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인상 깊은 흐뭇한 영상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My Love (님아)'. 각국의 노부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6편의 다큐멘터리이다. 그중 스페인 할아버지 아우구스토, 할머니 나티의 한 해를 담은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했다.
영상은 마치 내가 아우구스토와 나티 옆에 숨죽이고 앉아 엿듣고 있는 듯하게 잔잔하고 고요하다. 인상 좋은 노부부의 대화만 들려오는 장면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_My Love, 님아_Spain 중>
꽁꽁 얼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고 아우구스토와 나티가 서로 부축하며 근처 농장으로 걸어간다.
아우구스토 할아버지가 대화를 시작한다.
"새벽에 깨어서 잘 들어 보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쩌렁쩌렁해. 다른 소음이 없으니까. 해가 뜨는 시간에 말이야" 나티 "새들은 귀가 참 밝아"
"맞아. 얼마나 똑똑하지 몰라" "게다가 예쁘지"
"종류에 따라 제각각이야" "그렇지"
"개미새는 최대한 어두운 곳을 찾아가려고 해. 덤불이 많은 곳. 동물들은 참 영리해. 사람이 악의 근원이야 봐." "오,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망가뜨렸어 (막대기로 땅을 가리키며). 뭘 얻겠다고 이러는지" "망치는 게 목적이지"
"정말 고약하네"
길 중간에 있던 좁은 바위에 사이좋게 자리를 나눠 앉아 잠시 쉬어가는 나티와 아우구스토. 마침 새가 지저귀기 시작한다.
"새가 저기 있네" "이제 날이 풀렸어. 거의 다 왔지?" "응 거의 마누엘 농장 근처야"
"난 한 마리 새소리만 들리는데" "맞아. 소리가 똑같으니까 그래. 한 마리씩 차례로 노래하거나 "
"많지는 않아" "조금밖에 안 되지"
아우구스토 할아버지와 나티 할머니의 잔잔한 대화를 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나티도 아우구스토도 서로의 말을 존중하며 그저 일상적인 상대의 말에도 답변을 해준다. 그 어느 말 하나도 무시하지 않는다. 이게 대화구나. 이게 배려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하며 마음이 우리우리해지고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심 오늘 내가 Life라는 책을 읽었어! 근데~꽁알꽁알~"
10년을 한 사람과 살다 보니, 해가 갈수록 이 사람을 알게 될수록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그렇게 대화가 줄어갈 때쯤 생각했다. 대화를 하고 싶은데 무슨 대화를 할까? 이 사람에 대해서 다 아는 거 같은데…
그럼 대화거리를 찾아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그날 읽은 책 내용, 미드 내용, 영화, 사회, 문화, 환경, 쇼핑 등 대화할 주제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혼자 대화를 원하고 생각했지만 심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
심은 대화를 들어주고 생각을 말해주고 함께 그 시간을 나눠 주었다. 관계는 쌍방이다. 그렇게 자의이던 타의이던 반복적으로 서로 초인적인 노력을 하다 보니 우리의 일상으로 스미게 되었다. 지금은 젊기에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 주제들에 영향을 받을 힘, 버틸 힘, 나눌 힘이 존재한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기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느려지는 자연스러운 그 시기가 온다면 아우구스토와 나티처럼 지저귀는 새를 보면서 무심히 하는 대화에도 서로 귀 기울이고 존중을 주고받는 동반자로 살아가고 싶다.
결혼 11주년을 맞이하고 또 풍성히 채워갈 우리의 일상을 기대하며 또 다를 20주년을 향해 오늘도 하루 잘 지냈다.
*이 글을 읽게 되신 분들께서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My Love' 노부부들의 일상을 보며 잔잔하고 소박한 가치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퐁퐁퐁 샘솟는 일상 생각 꾸러미 by Sa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