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화 May 21. 2022

셀프빨래방에서 생긴 일

우리 동네에 24시 셀프빨래방이 생겼다.

시골마을에 셀프빨래방이라니, 선했다.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빨래방은 항상 비어 있다. 저러다 바로 문 닫는 거 아냐? 걱정이 되다.     


해가 지 동네 인적이 뜸해지고, 9시가 되면 술집과 편의점을 뺀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이런 낯선 적막이 좋았다. 그러다 점점 지겨웠고 마침내 숨이 막혀왔다. 25시 편의점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이제 하나 더 늘었다. 빨래를 핑계로 언제든 찾을 곳이 생겨 좋았다.     


마음 심란하면 이불이나 침대매트를 둘둘 말아 들고 빨래방으로 간다. 커다란 세탁조에 빨랫감을 넣고 시작버튼을 누른다. 세탁이 되는 동안 차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근처 강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잠이 안 오는 한밤중에 빨래방을 찾은 적도 있다.      


지난휴일에 대청소를 하고 침대 매트리스 커버도 갈았다.

얇은 여름이불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베개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머릿내가 났다. 수시로 햇볕에 말리는데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통째 빨아 쓰는 베개라서 이참에 빨기로 했다. 동네 셀프빨래방으로 향했다.     


베개 세 개를 대형세탁조에 넣고 시작버튼을 눌렀다.

세탁이 되는 동안 차안에 앉아 정태춘 `아치의 노래`를 들었다. 차창을 열어도 차안이 더웠다. 빨래방 안이 더 시원해보였다. 차에서 나와 빨래방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럭 드르럭, 세탁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세탁조 안이 온통 하얬다. 첨엔 거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솜이었다. 으악! 베개 솜이 터진 거였다.      

그제야 벽에 붙은 주의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베개, 인형은 세탁하지 마세요. 고장의 원인이 됩니다. 고장 시 변상 조치하겠습니다.


눈앞이 아찔했다. 다급한 마음에 정지버튼을 찾았지만 안 보였다. 드럼세탁기에 정지버튼이 있을 리 없었다. 불편상황 접수번호를 찾아 눌렀다. 빨래방 주인여자가 달려왔다. 세탁조를 살펴보던 여자가 불같이 화를 냈다.

“저거 안 보여요? 베개 넣지 말랬잖아요!”

“죄송해요. 못 봤어요.”

“어떡해. 이 세탁기 못 쓰게 됐어.”

주인여자가 세탁기와 나를 번갈아 쏘아보더니 나가버렸다.    

  

세탁이 끝나고 이어 탈수가 시작되었다. 세탁조 안에 솜뭉치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스마트폰으로 ‘셀프빨래방 세탁기 고장’을 검색했다. 업소용세탁기 가격도 찾아봤다. 

이윽고 세탁기가 멈췄다. 문을 열어 베개를 꺼냈다. 다행히 베개 두 개는 멀쩡했다. 터진 하나는 수습이 어려웠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베개와 솜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솜 손으로 쓸어담았다. 그때 주인여자가 다가와 세탁조 안을 살폈다. 여자는 청소기를 켜고  여기저기 흩어진 솜을 빨아들였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저기, 어떡하죠?”

“담부턴 베개는 넣지 말아요.”

한결 부드러워진 주인여자가 청소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기는 다행히 무사했다. 황급히 빨래방을 나왔다. 


운전석에 오르는데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한동안 그 빨래방에 못 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엄니, 꽃구경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