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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시언니 May 06. 2020

나는 지금부터 진심을 말하려고 해.

따루에게(1)



<따루에게>


잘 지내고 있니?

동생들은 다 건강하지? 엄마는 어때?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낚시하러 떠난 멋진 아빠는 지금쯤 무사히 돌아오셨을까? 



따루야, 나는 지금부터 진심을 말하려고 해.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스리랑카의 3등석 기차 안이었지. 그 날 너의 가족을 봤을 때, 난 부끄럽게도 이런 생각을 했어. ‘저렇게 가난이 몸에 붙어 있는데 어쩌자고 애를 넷이나 낳았을까.’ 너희 여섯 식구는 모두 마른 장작처럼 삐쩍 말라있었고 숭숭 빠진 이에 미처 기우지 못한 옷을 입고 있었지. 3등석은 지정좌석이 아니었으니까,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어물쩡 서 있는 나를 네가 옆에 앉혔어.



엉덩이 반쪽을 겨우 걸치고 너와 몸이 딱 붙은 채로 한참을 갔어. 너의 아빠는 서툰 영어로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고, 우리는 방향이 같다는 걸 알게 됐고,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빠는 내 차비를 내주고 내 짐을 들어주었어. 어쩌면 생각보다는 여유 있는 가족들인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내 못난 선입견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보답으로 식당에 가 밥 한 끼라도 대접하려던 나는 도리어 차만 얻어 마시고는 헤어졌지. 고마웠어.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여행자들에게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야.




문제는 다음부터였어. 내 전화번호를 알게 된 너는 수시로 연락했어. 여행 내내. 지나칠 만큼. 무례할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처럼.


새벽 4시 5시에 끝도 없이 하는 네 전화에 도미토리 사람들을 다 깨우면서 미안해서 혼났어. 전화로, 문자로 너는 꼭 너의 집에 내가 와야 한다고 말했어. 열 번도 더 한 것 같아. 



마침 내가 가려던 곳에 너의 가족이 살고 있었어. 



내가 그곳에 도착한 다음 날, 내 숙소까지 아빠와 따루가 툭툭을 타고 데리러 왔지. 제법 먼 길을 직접 데리러 온 너와 아빠의 모습을 보니 고맙고 반갑더라. 너희 가족은 2004년 스나미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는 마을에 터를 잡고 있었어. 당시 너희 가족도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했지. 그때 맞이한 가난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회복되지 않는다고. 함께 너의 집을 갔을 때,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가난함에 조용하고 담담하게 앉아 있었어.



먼 곳에서 손님이 온다고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과 카레, 코카콜라에 바나나까지 내왔지.

그리고는 나 혼자 먹었어. 아마 내가 먹고 남은 걸 가족들이 먹을 건가 봐. 얼마나 먹는 것이 맛있음을 표현하면서 식구들의 식사량에도 누가 되질 않는 건지 가늠하면서 신경 써서 먹었어. 내가 양손 가득 들고 간 건 과자와 초콜릿이었는데.. 어쩌면 쌀, 닭, 야채 같은 것이 더 필요했겠다 싶었어.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추고, 햇빛 아래서 구슬치기를 하고, 바닷가에 가서 소리도 질렀어. 갑자기 운동장을 뛰었고, 마을 사원에 가서 예불드리는 법도 배웠지. 


그리고 다음날도 아빠와 따루는 우리 숙소 앞으로 왔어. 이번에는 너의 친척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뜨겁고 사람이 많은 버스를 타고 관광 비슷한 것을 했고 나는.. 나는 뭔가...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너보다 돈이 조금 더 있으니까.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글 / 그림 : 두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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