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라는 이름의 악성 민원상대자
얼마 전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이메일의 한 줄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이 힘든데, 변호사가 된다면 다를까요?” 였다.
내가 처음 수습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를 담당하던 직원분은 나보다 서너살 정도가 많은 분이었는데 할줄 아는게 거의 없었던 나에게 의뢰인을 대하는 방법, 무례한 질문에 대응하는 방법, 작고 사소하게는 회사생활에 대한 꿀팁까지를 알려주시던 분들이어서 그 때 나는 사수 변호사님보다 그 직원분에게 더 많은 의지를 했었다. 우리는 자주 밥을 먹고, 퇴근한 후에도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그런 날은 대부분 내가 일때문에 너무나도 긴 하루를 보냈다거나 의뢰인에게 당할 만큼 당한 날이었다.
어느날 직원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이런 소리 들으려고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변호사 된 건 아닐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그 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크게 맞은 것 같았다.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나와 크게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자라는 동안에도 주변의 친구들은 거의 비슷한 가정환경이나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교를 다닐 때는 동아리 친구들이라 해도 나와 비슷한 학력을 가지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던데다가 학교를 나와 회사에 취직했을 때도 역시 전공은 다양해졌지만 거의 비슷한 학력에 관심사도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간혹 회사에, 또는 협력업체에 은은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이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쁜 사람이기는 하지만 왜 저러는 지는 알겠다’라고 이해가 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그 사람이 왜 나쁜지 이해가 되는 이유는 그 사람과 내가 처한 환경이 비슷하다거나 그 사람과 내가 경험한 것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고 난 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이렇게 사건으로 만난 의뢰인들은 나이, 성별, 경력까지 내가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사례가 하나도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다.
여튼 이런 의뢰인들이 일단 나에게 배당되면 좋든 싫든 간에 열과 성을 다해서 변론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시험에 들었다. 대부분 이렇게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한두푼도 아닌 돈을 주고 변호사를 샀는데 내가 까라면 까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마치 내가 자기 돈을 다 먹고도 조금도 열심히 하려는 생각 조차 없거나 능력이 한참 모자라는 사람인 양 나를 대했다. 이런 분들은 자주 나에게 화를 냈고, 그 돈을 받고도 이것 밖에 해주는 것이 없냐며 성화였다.
그러니까, 한참, 거의 매번 이런 악성의뢰인에 시달리는 나를 보면서, 직원분은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건 아닐텐데’라고 말했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전문직’인 만큼 직업적인 삶도 고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부분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은 인생의 아주 어렵고 힘든 순간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민원인’들보다 요구사항도 많고, 불만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답답한 것은 자주 그 요구사항이나 불만이 어디에서 기인한지 모를 정도로 이상하고 어디서부터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내 상식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할 수 없는 행동을 나는 자주 의뢰인의 말과 행동으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내가 받아들이기로 한 점이 있다면 아무리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어도 그건 내가 그런 절박한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이니, 함부로 의뢰인을 평가하거나 단정하지 않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 변호사를 꿈꾸고 있는, 또는 변호사의 삶을 상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이 상대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성민원인일 수 있다는 점, 그것만은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