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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Apr 21. 2022

처음 '워킹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날

(1) 워킹맘은 생각보다 포기해야 할 게 많았다

아기는 가지고 싶다고 아무때나 내가 원하는 때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기가 지금은 정말 생겼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할 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더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있던 어느 날에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놀랐다. 아가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를 찾아온 가장 큰 감정은 놀랍게도 '놀라움'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것처럼 엉엉 기쁨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냥 놀라고 말았다. 물론 좋기는 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




나는 아가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스스로 포기했다. 회사를 옮기고 싶었는데 차마 새로 옮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자 마자 바로 아기가 생겼다고 할 수가 없어서 마음 대로 회사를 옮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옮기고 싶었던 회사 몇 군데를 포기했다. 새로 하고 싶었던 일들도 꽤 있었는데 일을 다 벌여 놓고 갑자기 아기 천사가 찾아와서 이도 저도 못한 상황이 될까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몇 개월 밖에 안되는데도 나는 꽤 포기한 일들이 많았다. 그 때 무력감이 찾아왔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아가 때문에 이렇게 뭔가를 아무렇게나 막 포기해도 되는걸까? 어쩌면 내 인생에서 지금 이 도전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아직 뭔가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게 아닐까? 


물론 다른 엄마들은 용감하게 언제든 도전하고, 뭔가를 이뤄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마침 오랜 기간 동안 혹사해온 몸이 드디어 골골대기 시작했고, 그나마라도 몸을 사리며 일을 하려면 도무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최대한 몸을 챙기고 그동안 하던 일이라도 제대로 해 내는게 나에게는 최대의 목표였다. 임신과 출산은 오로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아니었다. 누가 본다면 백점짜리 남편이라고 할 나의 남편은 당연히 2세 계획에누구보다 적극적이었지만 임신과 출산을 남편이 직접 하는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날짜를 받고, 임신을 준비하고 최적의 임신 환경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일이었다. 생각보다 이런 준비 과정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이 도와주고 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어떤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 동동거리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동동거리는 기간 동안 나는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라 비록 얼마 안되는 시간이기는 해도 내 커리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은 뒷전이었다. 원래 한 가지를 하려고 생각하면 나머지를 생각 못하는 경주마 같은 성격인 내 탓이 가장 크지만,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는 거였다. 


새로운 일이나, 앞으로 나아갈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나와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새로운 일, 다음에 할 일,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일에 하나도 거침이 없었다. 분명히 임신은 남편과 내가 함께 하는 건데, 이상하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임신을 준비하면서도, 임신준비에 전적으로 협조하면서도 어떤 일도 포기하지 않아도 됐다. 


임신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글에선가 임신과 출산은 '아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거라고 했는데, 마음은 그렇지만 실제는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두려운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 자리 잡고 있는 기형아 검사들 때문에도 그랬는데, 임신이라는 사실을 만끽하고 기뻐하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겁쟁이여서 그런가, 뭔가 이 기형아 검사가 마치 내가 통과해야만 하는 어떤 통과의례 같았다. 시험 보는 기분으로 검사결과를 기다렸었던 것 같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남편은 '괜찮을거야 뭘 걱정해'라고 하면서 잠도 잘 자는데, 나는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면 어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입덧도 누구도 아닌 나만 겪는 거였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메슥거리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 시간들이 아주 오래 계속됐다. 그 때 마다 남편은 내 옆에 있었고 뭐라도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검색 몇 번만에 찾아내는 입덧 사탕이 뭔지도 몰랐고, 입덧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뭘 해줘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기만 했다. 


임신때문에 바깥 출입을 못하는 것도, 나뿐이었다. 내 임신초기와 오미크론 변이 유행은 절묘하게 겹쳐 있었는데 타고난 겁쟁이인 나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고 음식점도 가지 못했다. 무서웠다. 내가 아픈건 괜찮지만 약도 먹지 못하는데, 혹시라도 임신 초기에 아가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최대한 몸을 사렸다. 남편은 아니었다. 남편은 직업 상 정말 회식이 많은데, 오미크론이 창궐하던 그 시기에도 적어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회식이 있었다. 어느 날은 그런 남편이 영 마뜩치 않아서 이 시기에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녀도 되냐고 했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괜찮은 걸 보니 자기는 한 번 걸렸던게 분명하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자기는 수퍼항체가 있는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는 방이 있는 식당에서 회식을 해서 괜찮다고까지 했다. 나는 기가 차서 방에 같이 있던 사람 중에 한 명이 코로나에 걸리면, 그 방에서 같이 술먹던 사람들은 다 걸리는 거 아니냐고 볼멘 소리를 했는데 남편은 '에이-. 그럴일 없어' 했다. 그렇지만 수퍼항체를 가진게 분명하다던 남편도 결국 같은 방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걸린 오미크론을 피해가지 못했다. 남편은 결국 코로나에 걸렸고, 다행히 나는 걸리지 않았는데, 남편은 나에게는 코로나에 걸려서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주 사소하게 그런 것들이었다. 모성애라는 것이 왜 위대한지, 왜 엄마의 사랑은 아빠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임신을 하게 된 후, 나는 너무나 절실히 깨달았다. 아가를 위해서 하는 일은 뭘 해도 내가 더 잘했고, 남편은 하루종일 뭘 알아봐도 내가 5분 알아본 정보에 미치지 못했다. (쓰다 보니 너무 남편 디스 같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워낙 그런 성격인 우리 남편은 당연히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에 노력을 다하겠지만 결국 나만 못할거다. 결국 아가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내가 있을 거고, 내가 아가의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을 지키고 남편보다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아가와 보낼 것이다. 남편은 누구보다 육아를 열심히 하겠지만, 그래도 승진을 위해서 뭐라도 할 시간이 있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아를 위해서 일을 그만 두어야 하나 생각하는 것도 나 뿐일 것이다. 


그게 조금 나는 소외감이 들었다. 오늘 워킹맘클럽의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는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데, 내 친구가 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래도 아기를 갖고 출산을 한다는 건 여자만 할 수 있는 특권같은 일이잖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은 나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고 내 인생을 가로막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큰 허들 같았다. 아가는 물론 아빠도 사랑하지만 결국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되잖아, 내 몸에서 나온 아기라는 건 그런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인 것 같아, 라는 친구의 말이 다른 어떤, 누구의 말보다 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아기에게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조금이라도 덜 나의 인생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미루고 미뤄놓았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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