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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Mar 07. 2024

나와 딸기 그림

산골일기 육십 세 번째

아차! 싶었다. 

일천한 데생실력을 망각하고 덜컥 딸기를 오브제로 선택한 것부터가 실수였다. 

겨우 사과 하나를 그리고 나서 얻은 우쭐한 근자감으로 선택한 딸기는 내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다. 

미세한 빛과 어둠을 머금은 그 수많은 씨앗들이라니! 

씨앗 하나하나가 날큼한 눈을 치켜뜨고는 “내가 그리 만만하게 보이든?” 하며 

살의 가득하게 나를 째려보는 느낌이다. 

생기다 만 것 같은 나의 딸기들을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싸해진다.     


“아! 나에겐 재능이 없구나. 여기서 접어야 하나?”

의욕만큼이나 빠르게 좌절이 나를 넘어뜨린다. 

그 모습이 짠했는지 지도하시는 엄 선생님이 그림을 다듬어 주시며 툭하고 한마디 던진다.


 그림은 색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빛을 그리는 거예요.” 


오호라! 그 말이 섬광처럼 머릿속에 번쩍인다. 

씨앗을 품은 딸기의 형태와 붉은빛에만 매달려 있던 내게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렴풋하게 깨달아졌다. 

사물을 해석해서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작가만의 생각과 감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은 얼마나 사실과 유사한가 라는 일치도 문제가 아니라 

사물이 가진 본질과 서사가 어떻게 감각적으로 드러났는가 하는 문제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림이라는 개념이 달리 보였다. 

잘 그리고 못 그린 그림을 구별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어졌다. 

어떤 그림이든 몰입된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만 담겨 있으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예전에 시인 평단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현대시 가운데 난해한 시들이 난무할 즈음, 작가의 수준만큼 대중의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가? 

아니면 작가가 대중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춰야 하는가?라는 논제였다. 

처음부터 해답이 없는 논제였지만, 작가의 고유성과 작품의 대중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작가의 고유성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작품 속에 필연적으로 많은 해석이 담길 것이다. 

반면 대중성이 강해지면 해석은 대부분 통일되거나 단일화되기 마련이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을까? 

어쩌면 한 가지 해석으로만 통일되는 것보다 다양한 해석과 느낌과 감상이 묻어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그림도 비슷한 것 같다. 

아니 글보다 더 많은 해석과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림이다. 

심지어는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무의식의 그림까지도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빛과 어둠, 눈부심과 그림자로 인해 사물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을 배운다. 

재능은 없지만 진솔하고 지극한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붙잡는다. 

그렇게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마음의 어둠마저 부둥켜안을 마음의 햇살도 그려지겠지. 

                                               (차마 씨앗조차 못 그림 미완성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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