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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Mar 27. 2024

봄바람과 대나무 숲

산골일기 육십육 번째

대숲이 봄바람에 일렁인다. 

가지가 부러질 듯 휠 때마다 거친 바람의 길이 보인다.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은 억센 수컷의 바람 같다. 

보리밭에 일렁이는 부드러운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바람찬 대숲엔 격정이 가득하다. 

그 격정을 보고 있노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선명하게 시각화되는 기적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나는 그렇게 흔들리는 대숲의 바람을 보며 작은 시를 품어 본다.


- 바람 가득한 대숲 -     


대숲에 큰 바람이 들었다.

휘였다 일어서는 

가지들로 대숲이 출렁인다.     

먼바다의 격정을 

토해내는 파도처럼

적막한 산울의 사무친 마음이 

푸르게 부서지고 있다.     

저렇듯 술렁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다시 

적막한 산울의 정물이 될 터이다.     

풍상의 너울을 넘는

그대의 푸르른 발길처럼.     


인생의 모진 굴곡을 묵묵히 건너온 강철 같은 사람들의 굳은 의지가 대숲에 묻어 있다. 

그렇다고 농담 한마디 건네지 못할 만큼 비장한 얼굴은 아니다. 

대숲의 표정에는 많은 얼굴이 담겨있다. 

언제나 변화무쌍하다. 

오늘 아침에는 간밤에 비 듣더니 자욱한 안개다. 

안개에 잠긴 대숲은 또 얼마나 고요한지. 

부서지듯 울려대던 파도소리는 간데없다. 

그 고요함이 내 마음까지 적막하게 한다.      


- 안개 낀 대숲 -     


대숲이 운무에 잠겼습니다.

바람도 잦아들어

댓잎마저 적막합니다.     

후드득 새떼가 지나며

깨워 보지만

대숲의 아침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나의 밤은 뒤척이는

상념으로 가득했는데

대숲은 가만히 내 손을 잡아

운무 속으로 가자합니다.     


대숲의 천변만화를 보고 있으면 단 하나의 사물에 고정된 시각 속에도 

세상의 모든 다양성이 묻어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모든 사물은 오래 보아야 예쁘다. 정말 그렇다. 

     

무엇엔가, 누구엔가 지루함이나 권태가 느껴지는가? 

대상의 깊이가 얕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의 깊이를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일천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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