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 낮 시간에 운전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간이 맞으면 최화정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 최화정은 목소리가 청량하고 대화 톤이 밝아 참 듣기 좋다. DJ로 장수하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한 게스트들을 대하는 법에 상당히 공감이 간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방송 시작 전 게스트와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토크쇼 방송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과는 간단히 인사만 하고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전에 했던 얘기를 방송에서 다시 처음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어색해하면서 말문이 잘 트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반면 방송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방송이 시작되면 방금 했던 얘기도 처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꺼낸다고 했다.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석에서 말이 적은편인데, 기본적으로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사람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모임 자리에 A가 포함되어 있으면 그 이야기를 또 하지 않는다. A가 같은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도 했던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 가운데 매우 외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했던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아주 신나게 잘한다. 그들이 특별히 대화 소재가 많다거나 박학다식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들었던 사람은 또 듣기 때문에 딱히 재미가 없지만,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면 안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나게 말하는 사람은 딱히 반복해서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건 외향적인 모습으로 잘 어울리면 사회성이 뛰어나고, 조용히 있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항상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같이 있을 때 훨씬 편하다. 주도권을 쥐고 모임 자리의 스포트라이트를 계속 독점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사람들은 같이 있으면 피곤해진다.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는 탓도 클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활발하고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사회성이 좋다는 기준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요즘은 거의 사라졌고, 사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은 악명이 높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 뽐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본인 이야기에만 심취하는 사람은 피곤하다.
이런 사람들은 모처럼 다른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잠깐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서 말문을 닫게 만든다. 좀 조용해도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독점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 이야기가 충분히 끝맺음을 했는지 생각을 하고 참여하거나, 혹은 굳이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이 좋다. 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