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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Jan 12. 2023

제국주의는 절대악인가?

맞으면서 배우는 불편함

스스로 제법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역사가들은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의 비유럽 지역 침탈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대로 평화로우면서도 제법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에게 시련을 겪게 했다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가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은 흔한 편이며, 실증적이고 타당한 근거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청 왕조, 무굴 제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층은 도덕성이 높고 평화를 사랑했기에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지속적으로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자 하는 경향을 버린 적은 없다. 그들이 유럽 지역을 침략하지 않은 것은, 그닥 관심이 높지 않았거나 그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기 전까지, 힘 있는 국가의 정부 중 자신보다 힘이 약한 다른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며 대화와 존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교류를 하고자 하는 경우는 없었다.


비유럽권의 전제군주제 국가들은 백성들 위에 초법적으로 군림하며 그들을 착취했다. 적어도 합법적인 형태로 서민 계층과 타협해가던 19세기 서구 지배층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은 국제사회에서는 냉엄한 힘과 이익의 논리를 따랐지만, 내부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어느 정도 수용했다. 기득권 엘리트 계층에서도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고, 속도와 지향점에 다소 차이는 있을 지언정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역사가들은 이중적, 위선적 모습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침략전쟁을 금기시하고 각 민족과 국가의 독립성을 가장 중시하는,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어느 정도 정착된 가치를 제국주의 시대의 강자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소급 적용하는 것 같다.




이들이 추구한 민주주의와 그에 부수된 여러 가치는 그들이 지배한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전파되어 각 민족이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계급이 없는 민주주의 공화정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이전에는 다른 민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면서 정치체제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물론 서구 열강이 일방적으로 그은 분할선으로 인해 독재정권의 폭압적 통치와 내전이 빈발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이전 부족들 간의 대립이라는 내부 요인도 작용한 결과인 반면, 부족 간 갈등이 심각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적어도 이전의 전제군주제 국가들보다는 나은 형태의 사회가 성립했다. 남미의 독재정권들을 예로 들며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권들조차 최소한의 합법적 절차는 의식하고 형태라도 갖추고 노력한다. 공식적으로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황제 등의 전제군주가 지배하던 사회보다는 분명 나아졌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분명 당대에 착취한 사람들에게 크고 깊은 고통을 안겼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지배한 강대국이라고 해서 절대악은 아니다. 동의 여부를 떠나, 강대국들의 경쟁과 정복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명이었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국가이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역사의 흐름이 형성됨에 따라 제국주의는  반복되서는 안될 잘못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민사회 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시민사회의 가치들이 지배 과정에서 피식민 민족들에게 전달된 것 또한 불편하지만 분명하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은 당대의 강대국에 대한 단순한 비난을 넘어서, 정복과 지배에 기초한 국제사회의 경쟁 방식의 피날레는 아니었을지 검토해보는 단계로 진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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