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U Mar 23. 2020

SURE! WHY NOT?

오세아니아의 한 공항, 모든 나라의 공항에는 대기시간을 견뎌내는 무료한 환승객을 위해 TAX FREE라는 치명적 문구로 유혹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면세점이 존재한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없어도 선물을 구실삼아 발을 들이고야 마는 마성의 장소. 나는 유혹에 약한 인간이니까 역시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화장품 코너의 립스틱과 바디용품을 거쳐 향수 코너로 진입하여 이런 저런 향을 맡아보다 더 이상 향을 분간할 수 없어 코를 막고 천장을 쳐다보며 몸을 뒤도는 순간, 팔꿈치에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 닿는 촉감이 느껴지더니 곧 와장창 소리가 났다. 

얼굴이 새하얘 진다는 건 이런걸 뜻하는 걸까. 몸을 고르게 순환하던 피가 멈춘 느낌.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박살이 나버린 향수병과 바디로션. 그리고 내 옆에 멀뚱히 서있는 어린 여자아이. 아이의 부모는 황급히 달려와 아이를 추궁하였고 나는 아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서툴게 변명했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직원. 나는 다급히 다시 설명했다. 내가 실수로 이 향수병을 쳐서 깨졌다. 변상하겠다. 미안하다. 이런 말들을 황급히 뱉어낸 듯한데 실제로 어떤 문장으로 얘길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어를 했는지 한국어를 썼는지.


아이의 엄마는 그제야 아이에게 쏘아댔던 광선의 방향을 바꿔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큰 소리로 주목을 끈 것도 모자라 공기를 가득 채운 향수 냄새 덕분에 귀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오 마이 갓. 

다가온 직원은 가져온 물티슈로 슥슥 바닥을 닦더니 바디로션이 듬뿍 묻은 그 휴지뭉치를 나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Do you want to try it?


해 맑게 웃으며 입이 쫘악 벌어진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순간 어이가 없어 말문이 탁 막혔다. 발라보라고 말하는 것도 모자라 손에 덕지덕지 묻은 로션을 내 얼굴에 바르는 시늉을 하려고 손을 뻗는 순간 놀라서 움찔하기까지 했다. 뭐지 이 상황은?

뻘뻘 땀을 흘리며 바닥을 닦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내게 그녀는 말했다.

 That’s ok, It happens all the time.


수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 한 문장. 그 말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당신의 상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는 합니다. 이 것은 생각보다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나는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고 이 일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답니다. 그러니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비록 그 빛나는 재치 앞에서 나는 멋진 유머로 화답하지 못했지만 장난기 가득한 그 따스한 배려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만약 지금이라면? 눈이 없어질만큼 활짝 웃으며 대꾸할거다. 

Sure! Why not?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이 짓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