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
나는 여러 계기로 미술과 관련한 상식적인 수준의 책을 가끔씩 읽게 된다. 그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책이 그림 자체에 대한 해설인 것에 비하여 이 책은 그림이 거래되는 미술 시장에서 그림값이 형성되는 배경과 그림값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저자는 그림을 포함한 미술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화가)와 작품을 구매하는 콜렉터를 미술 시장의 양대 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성공한 여러 유명 작가와 큰 손 콜렉터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펼친다. 중세시대에 예술에 엄청난 투자를 한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나온다.
그림값에 대한 책 답게 이 책에서는 그림값을 합리적으로 산출하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그림 시장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이해가 쉽다. 부양 가족 1명과 살고 있는 화가가 50호 크기의 그림을 평균 1달 걸려서 완성한다면 이 그림의 가격은 일반 근로자의 2달치 월급에 해당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화가도 사회의 일원으로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2인 가구 도시 근로자의 중간 수준 생활이 목표라면 매달 평균 500만원의 수입이 필요하다. 그림이 거래될 때 화랑과 화가가 5 대 5로 수익을 배분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매달 1천만원짜리 작품이 한점씩 팔려야 한다.
이것은 이상적인 계산으로 실제 작가가 작품을 팔아서 버는 수입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미술 작가가 창작 활동을 통하여 올린 평균 수입은 1년에 약 440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1달에 40만원이 채 안되는 작은 수입이다.
저자는 한국 미술시장의 독특한 특징의 하나가 ‘호당 가격제’라고 한다. 특정 작가에게 매겨진 브랜드 가치에 그 작가가 창작한 작품 크기를 가지고 이 작가의 작품 가격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방식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작가의 경우, 여러 과정을 거쳐서 ‘어떤 화가는 호당 그림 가격이 얼마이다.’라는 식으로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1호당 가격은 화가와 화랑이 함께 결정한다고 한다. 1호의 크기는 대략 A4 종이의 절반이다. 갓 데뷔한 신인 작가의 작품은 호당 가격이 4~5만원 정도이고, 중견 작가는 10만원부터 시작하고, 블루칩 작가의 호당 가격은 수직 상승하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가인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의 경우 호당 2억원 까지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당 가격제의 기본 원칙은 창작에 대한 가치를 분별하는 미학 보다는 노동 경제학에 가깝다. 그림의 크기와 화가의 노동력은 비례하고, 그만큼의 노동력을 화폐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 컬렉터와 그림 중계상에게 그림의 가치를 크기(노동력)에 비례하여 매기는 것은 어찌보면 스스로 자존심 상해야 하는 거래 방식이다. 창작 작품의 실험 정신과 역사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도 호당 가격제는 어처구니 없는 거래 방식일 것이다.
어떤 작가의 호당 가격만 정해지면 그 작가의 작품 가치가 일률적으로 나오니 굳이 평론가의 평론이 필요없고, 평론이 필요없는 미술 시장의 질적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어느정도 브랜드 가치가 만들어진 작가가 양산한 작품은 모두 보장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으니 이런 경우는 화랑이나 작가 모두가 호당 가격제를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호당 가격제라는 후진적인 방식이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나는 미술 시장에서 창작물인 그림의 가치를 그림의 크기에 비례하여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는 저급한 가치 평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건설업에서 직종에 따른 근무 기간(경력)에 따라 인건비 M/M(Man per Month, 1달 평균 노임 단가)를 책정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보통신 기술분야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의 능력은 실무 경력과 어느정도 연관은 되지만 실제로는 대학 전공과 근무 경력을 떠나서 거의 100배까지 결과물에 차이가 날 정도로 창의성이 매우 도드라지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는 건설업과 같은 M/M 산정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가치를 매기는 하청 용역 방식을 정부/지자체,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위 10개의 직업군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1~3위 순위안에 들어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하위 1~3위에 속하는 3D 직업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의 아픈 현실이다.
우리는 미술 시장의 예술가를 포함하여 창작의 가치를 분별하는 것에 서툴고,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여 여전히 근대 산업혁명 시대의 물질적 가치관과 계산 방식에 나라 전체의 시스템이 머물러 있다. 호당 가격제는 이렇게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해 버린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 미술 시장에도 어김없이 투영된 결과이다.
미술시장의 이상적인 구조는 작품 투자자들이 창작자를 지원하고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창작하면서 안정적인 투자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작가의 노동력이나 사용된 재료비를 기준으로 한 중세 시대의 작품 가격 산출방식이 근대를 지나오면서 일찍이 폐지되었다. 작가의 창의성과 역량에 따라 작품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으로 미술계가 이미 변해왔다는 뜻이다. 미술 작품이 작가의 땀과 열정과 영혼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시장에서 인정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