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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Sep 14. 2021

심리적 문제의 시작점

심리적 문제는 한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얼마 전 모 회사로부터 현직자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13 가지의 질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두 가지의 질문은 ➀지금 일의 가장 큰 매력 또는 장점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➁이 일을 잘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였다.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랬다. 답변➀ “저는 매 학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다양한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일이 제겐 무척 매력적이에요. 또한 상담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나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할 때가 많은데요. 끊임없이 저를 성찰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이 제 일의 장점입니다.” 답변➁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와 사람 개개인의 욕망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방법으로 책과 영화, 드라마를 찾아서 즐겨보는 편입니다.”


  나는 대학 상담 이외 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담이 있다. 상담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50분~60분 정도 진행하는데 작년 11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중학생 상담이 있다. 그 당시, 자살충동과 관련된 내담자라서 이를 맡아야 할지, 과연 내가 상담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상담 중에 죽으면 어떡하지? 등등 실로 고민이 많았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주변에서는 위험하다고 하지 마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말수가 적은 그 아이는 “선생님 혹시 다음 주에 저희 집에서 상담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라는 말을 건넬 정도로 자신을 개방하게 되었고, “이런 이야기를 어른과 나눠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줄 정도로 어른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되었다. 


  매주 빠지지 않고 상담에 나오는 건 어른도 지속하기 어려운 일인데, 매주 상담에 나오는 내담자의 성실성을 보며 놀랍고 나 또한 배우는 게 많다. 정말이지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상담을 내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상담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 사람의 핵심적인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에 대한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다. 진짜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이러한 공부를 통해 나와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며,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의 원가족 특히 첫 양육자인 어머님과의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위에서 소개했던 내담자의 어머님께 편지 형식을 빌려 '어머님이 해야 할 역할'을 정리해서 보내드린 내용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대부분 심리적 문제의 시작은 한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비대칭적 관계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 OO의 상담 중간 정리:  -어머님이 해야 할 일- >


  OO의 우울은 만성화된 우울이라기보다는 급성 우울로 보입니다. 억압에서 오는 즉, 화를 눌러서 생긴 우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불만을 말하지 못하는 관계에서는 부담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사람마다 관계 맺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물론 어머님과 OO가 관계 맺는 방식도 서로 다릅니다. OO는 보통의 중학생 여자 아이들이 하듯이 친밀하게 손잡고 화장실도 같이 다니는 친구 집착 스타일의 관계를 편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구랑 같이 있어도 따로 각자 노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OO가 친구 만드는 방식은 자신에게 도움 되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합니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이기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건 OO가 이기적 이어서라기보다는 OO의 스타일입니다. 이런 스타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게 주변 사람들 특히 어머님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데려가려는 어머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 이면에는 늘 바빴던 어머님이(암수술과 직장일) OO에게 가지는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등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박물관 등을 데려감으로써 OO에 대한 어머님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보상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OO가 원하는 게 아니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즉 어머님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는 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 OO과의 관계에서 대화하실 때 어머님이 조심해야 할 일을 적어봅니다.


1. 보상하지 말고 반응해주세요 

OO가 원하지 않는 것을 굳이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님은 OO가 불만을 이야기하면 “그래, 그래” 식으로 OO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반응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그래야 OO가 자신의 감정(화, 분노 등)을 억압하지 않게 됩니다. 본연의 감정을 억압하게 되면 결국 그것이 우울증상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2. 사과하거나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머님의 이런 말은 OO가 더 이상 불만을 토로할 수 없게, 죄책감을 일으킬 수 있게 해서 OO의 입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불만을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미안하다고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3.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지 마시고 OO가 원할 때 해주세요

예를 들어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배우게 해 주시고 엄마랑 백화점 가고 싶다면 그때 동행해주시면 됩니다. 


 어머님은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예요. 아이들에게 더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자녀에게는 독이 되어 병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OO도 충분히 건강한 아이입니다. 착하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는 어른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아 보일 수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병든 아이입니다. OO는 좀 더 이기적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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