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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Jul 07. 2022

자기발견#5. 치유의 글쓰기

삶이 너무 편안해도 삶이 너무 고단해도 글을 쓸 수 없다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초록동색(草綠同色)은 풀색과 녹색은 같은 색이라는 말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함께 하거나 같은 편이 됨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모두가 경험적으로 아는 거지만,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신이 나고 대화중에 웃음이 많아지고 그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집니다. 더군다나 타인과의 좋은 대화는 자기 이해를 높이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했던 수업이 이번 학기부터는 직접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대면 수업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강의실에서 수업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인간은 습관의 존재구나, 적응의 존재구나'를 실감하게 되었고 곧 적응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성적처리도 끝났고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어서 나를 되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글을 너무 안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늘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새로운 학기에 에너지를 많이 쓴 모양입니다.      


  한 때는 쓰지 않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 글 작업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러지 않는 걸까요?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분명 시간이 부족해서만의 이유는 아닙니다. 회상해보니, 매일 글을 쓰던 그 당시는 말이 통하는 대화 상대도 없을뿐더러 삶이 즐겁기는커녕 괴롭다고 느낄 때입니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괴로움이 글을 더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당시의 글쓰기는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치유의 장이 되어주었기에 더 열심히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적다 보니 지금의 삶이 그때보다는 많이 편안해졌나 봅니다. 거기다가 주기적으로 나를 위한 분석도 받으면서 조금 더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많은 덕분이겠지요. 우리는 삶이 너무 편안해도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을 쓸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반대로 삶이 너무 고단해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글을 쓸 여력이 없으니까요. 약간의 스트레스가 삶의 활력이 되듯이 약간의 고통과 괴로움은 글쓰기에 최적화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억울함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족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추어서 살아왔던 사람들은 억울함의 감정을 많이 호소합니다. 그 억울함의 감정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치유적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내담자에 따라 글쓰기를 권할 때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저의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스피치를 위한 글쓰기, 즉 스피치 대본을 직접 작성해보게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질문이나 키워드 몇 가지를 주고 나서 그중에서 관심 주제를 찾아보게 한 후, 글쓰기 형식에 맞춰서 스피치 대본을 작성해보는 것인데 이 학생의 글은 ‘초록은 동색이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합니다. 편안함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학생에게는 충분히 치유적입니다.           


1. 대상과 목적 분석

-대상 : ‘평범함’을 거부하는 나를 걱정스러워하시는 부모님

-목적 : 부모님께 명확히 나의 가치관을 전달드리고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 의지를 다지기 위함  


2. 주제 선정

-주제 : 세상은 나에게 ‘평범함’을 강요하고 있다


3. 질문 나열

-‘평범함’을 강요받는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처음 이를 인지하고 느낀 감정은?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처와 그 이유는?

-이 강요로부터 앞으로의 나는? 


4. 목차 설계

-서론 : 나에게 평범함을 강요하는 세상

-본론 : 그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가치관 및 대처

-결론 : 앞으로의 계획     


5. 내용 작성

  아빠, 엄마. 제가 세상으로부터 강요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뭔지 아세요? ‘평범함’이에요. 처음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세상 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본인의 삶에 대해 불만족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살아간대요. 남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혹은, 평범하게 살면 적어도 안정성은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에요.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거든요. 제 인생을 타인의 인생과 비교하며, 다름에 불안감을 느끼고 뒤처짐에 조급함을 느끼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온전히 나의 가치, 나의 능력, 나의 행복에 집중하며 ‘그저 그런’, ‘10년 후가 그려지는’ 인생이 아닌 나라서 살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도 꽤 들어왔어요. 그리고 아빠, 엄마도 이런 이유에서 저를 걱정하신다는 거 잘 알아요. 현실을 살라는 말을 몇 번 듣다 보니 저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지, 뭐. 이게 내 현실인데.’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어요. 제가 저에게 평범함을 강요하게 된 거죠. 

  이를 인지한 지금의 저는 제 가치를 높이고, 그를 입증할 만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경험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남들이 다 가는, 그래서 그것이 옳은 것이라 여겨지는 길이 아닌, 내가 개척해 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요. 저는 이제 노력/의지/집념과 같은 통제 가능한 요소들을 최대한으로 갖추어놓고, 기회나 운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을 기다려보려 해요. 그게 High risk에 대한 결과로, Big Loss보다 Big return에 가까운 결과를 얻어내는 길이니까요. 열심히 노력할 테니 옆에서 믿고,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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