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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영 Jan 25. 2023

자기발견#8. 나라는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는 양 타입의 사람인가? 음 타입의 사람인가?  

우리는 왜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왜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는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는 걸까? 

나라는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페르소나는 자아와 외부세계 사이에서 작용하는 정신적 실재다. 이제 여러분이 다른 방향, 즉 내면을 들여다볼 때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그림자다. 그것은 개개인이 자신의 달갑지 않고, 어둡고, 심지어 약한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하는 인격의 열등한 측면이다. 그것이 너무나 의기소침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층 분석을 하게 될 때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아래에서 우리는 아니마 anima와 아니무스 animus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마는 남성 안에 있는 여성적 이미지를, 아니무스는 여자 안에 있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 아니무스 혹은 아니마의 투사는 종종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험을, 아니면 역으로 극도로 싫어하게 되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러한 이미지들 배후에는 태모Great Mother와 하늘 아버지 Heavenly Father가 있다. 또한 우리가 더 나아가게 되면, 정신의 바로 그 중심부에 자기 Self, 즉 내적인 신-이미지가 있다.”      
                                                                            에딘저의 『융 심리학과 영혼의 과학』 25p      
사진출처:      https://curiosity-factory.tistory.com/entry/%EB%B6%84%EC%84%9D%EC%8B%AC%EB%A6%AC%ED%95%99


융이 말하는 개성화는 깨달음의 과정으로서, 이는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융은 ‘관계 맺음’ 없는 개성화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그것이야말로 개성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개성화를 위해 내면으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이 '그림자'다. 그런데 그 그림자를 외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게 되고, 그림자 투사로 인해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상대에게서 찾아내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심혼'의 중재다. 여기서의 심혼은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초반부 인용 글에는 “아니마는 남성 안에 있는 여성적 이미지를, 아니무스는 여자 안에 있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라고 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음과 양, 또는 로고스와 에로스로 나누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여성 중에서도 양의 기질(합리성, 이성, 목표/성취 지향성, 경쟁 등)을 가진 사람이 있고, 남성 중에서도 음의 기질(정서, 감성, 관계 지향성, 협력 등)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즉 성별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양과 음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따라서 양의 기질을 가진 여성의 내면에는 음심혼이, 음의 기질을 가진 남성의 내면에는 양심혼이 있다고 보면 된다.     


자기실현의 과정인 개성화를 위해서는 음 타입의 사람은 아니무스를, 양 타입의 사람은 아니마를 개발시켜야 한다. 우선 양 타입의 사람은 자신의 정서적인 면을 가꿔나가야 한다. 이들이 음심혼인 아니마에 사로잡히면 비합리적인 감정으로 억울해하고 징징거리게 될 수 있는데, 기분이 자주 바뀌는 변덕스러운 사람은 아니마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중년의 이들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음 타입의 사람은 현실세계와 끊임 없이 접촉하면서 현실감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이 양심혼인 아니무스에 사로잡히면 비합리적인 의견으로 공격적이고 독선적이 되기 쉬우며, 이는 종종 따지는 버릇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특히 중년의 이들은 말싸움을 하기 위한 말싸움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양 타입의 사람인가? 음 타입의 사람인가?

나는 목표지향 중심의 사람인가? 관계지향 중심의 사람인가?  

나는 꽃 선물을 받았을 때, “금방 시들어버릴 텐데 차라리 다른 것을 주지”라는 생각이 드는가? 너무 기쁜가?

 



깨달음의 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 self' 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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