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F를 사랑하는 나는 레즈비언일까? 팬 섹슈얼일까?
나는 열다섯 무렵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았다. 첫사랑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금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사랑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거나, 납득시켜야 하거나, 좋지 않은 눈빛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타인을 설득시킬 내 나름의 논리를 찾아보려 애쓰거나, 남자를 좋아해 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물론 멋지게 실패했지만.
첫사랑과 헤어지고 만난 두 번째 연인도 여자였다. 그 후로 나는 연애 상대가 여성이었고, 지금의 연인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레즈비언인 채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MTF을 사랑하는 것은 팬 섹슈얼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pansexuality
범성애
범생애(汎性愛/pansexuality)는 상대의 성별의 상관없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양성애는 남성과 여성을 좋아하지만 나는 계속 여자와 연애를 하다가 지금은 MTF를 사랑하니까, 범성애자라는 것이 친구의 이야기였다.
응? 나는 내 연인을 여성으로 생각하며 사랑한다.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길 선택한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나는 레즈비언이 아닌가? 어째서 나는 범성애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가? 마치 줄곧 본인이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처음 동성에게 연애 감정을 느껴서 당황해하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여자 친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긴 머리를 집게핀으로 고정시킨 뒤, 채소를 다듬고 있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감정적인 나를 진정시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또한 강해 보이는 인상 뒤에 상처받기 쉬운 내 영혼을 끌어안고 지켜주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범성애자라고 정의하기보다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내 모친은 아직도 그녀의 호적상 성별이 남성인 것 때문에 그녀를 '남자 친구'라고 부른다. 나는 모친에게 수도 없이 정정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여성으로 대하세요,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 어머님께서 편하신 대로 부르시게 해."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내가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정의하기 위해 모친에게 그녀를 '여자 친구'라고 불러달라는 강요를 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둘이 길을 걸을 때, 손을 잡고 걸으면 사람들이 우리들을 한 번 보고, 다시 한번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듯 쳐다본 적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여성 둘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필시 자신이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돌아보았을 거라고 했다.
가끔은 어떤 가게 들어가서 무엇인가 사려고 하면 점원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사이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울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사귀는 사이'라고 외치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점원들을 보며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파트너예요."
나는 아직 회사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회사에 커밍아웃을 했고, 나와 사귀기로 했을 때 회사에 나를 '파트너'라고 소개한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여성이고 그녀가 MTF라서 우리를 레즈비언이라고 부르지 않고, 내가 트랜스젠더를 사랑해서 범성애자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는 우리를 서로의 파트너라고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살아나갈 사랑 해마지 않는 나의 파트너가 곁에 있어 나는 무척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나는 파트너가 있는 여자야.'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