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
은 내가 언제나 바라던 것이었다. 서비스 직종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일반 사무직으로 직업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익숙해지면 금방 쉬워질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나는 우울해졌다.
내가 막연하게 꿈꾸던 안정적인 일자리와 적지도 많지도 않은 급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책을 읽으면 글을 쓰지 않는 내가 싫어졌고, 영화를 보면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 내가 싫어졌다. 그래서 숏폼을 보았더니 다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싫어졌다.
그래서 일을 늘렸다. 회사에서 금지하는 부업으로 한국어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잠시 우울함을 잊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나니 나는 이 일 또한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내가 대체가능한 인간이라는 것에 또 눈물이 났다. 영어공부도 해보았고, 번역공부도 해보았지만 목적이 없으니 즐겁지 않았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남을 미워하며 내 처지를 비관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을 너무 빨리 이뤄버린 것인지, 내가 이루고 싶다고 착각했던 것인지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나는 점점 여유가 사라졌다.
사람은 여유가 없으면 핑계를 찾는다. 화를 내는 것도 일이 많은 것도 월급이 적은 것도 내 집이 없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렸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동료가 실수를 했기 때문이고, 월급이 적은 것도 내 집이 없는 것도 회사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욕하고 동료를 욕하며 언제나 화를 가득 쌓아두었다. 한 번 건드리기만 해 봐라, 내가 다 터트려주마, 하는 악의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내가 빠진 수렁을 깊게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싫다, 밉다, 힘들다, 화난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당시 나는 이 말들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회사에서 허리를 다쳤고, 그대로 병원에 실려갔다. 본의 아니게 일을 쉬게 된 것이었다. 움직이기 어려워 씻지도 못하고 3일을 내리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원은 2주간 절대안정이라는 처방을 내려주었고, 나는 휴대전화로 가능한 회사 일에 차질이 없을 정도의 연락만을 하며 지냈다.
회사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8년 전 일본으로 건너와 내가 경험했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유학생으로 그리고 외노자로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이 웃었고 많이 울던 것을 떠올렸다. 너무나 불안정했던 시절, 어떻게든 이곳에 발붙이고 있기 위해 벌였던 수많은 사투들, 그리고 나는 그 사투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함으로 끝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리적인 것은 취했으나, 내 마음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주체가 되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빈 곳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글을 쓰는 것도 좋고, 술을 만드는 것도 좋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도 좋겠다.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는 것을 목표로 천천히 가보아야겠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을 것이며, 당장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고, 내일부터 또 출근을 할 것이며, 주어진 일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제 내 마음을 채워갈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탐구를 시작해야겠다.
2024년쯤에는 어떠한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