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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Jun 05. 2023

심료 내과 예약을 하던 날

"우는 것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와 5년쯤 되었을 때였다. 여자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 과학관에 플라네타리움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라 플랫폼에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곧 눈앞에 도착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라는 생각에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일 처리할 업무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만 또르륵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코끝이 찡해지면서 숨이 가빠지며 가슴속에 잔뜩 뭉쳐있는 무엇인 가를 토해내듯이 대성통곡을 하게 되었다. 옆에 있던 여자 친구가 놀라서 나를 안아주었을 때, 지하철이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지하철에 올라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여자 친구에게 안겨 엉엉하고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울음이 그친 것은 그로부터 지하철이 서너 대 더 지나갔을 때였다.  여자 친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내게 무엇을 미안해하는 것인지 물었다. 나는 대뜸 울어서 미안하다고 했고 여자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떼었다.


"우는 것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여자 친구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울었다. 여자 친구는 다시 한번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주었다. 


  우리는 과학관에 가는 것을 보류하고 여자 친구네 집으로 갔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물을 한 병 샀을 뿐이었다. 여자 친구 집 소파에 앉아 나는 천천히 물을 마셨다. 여자 친구는 나에게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지만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갑상선 호르몬 약을 줄여서 호르몬 억제가 안 되니까 그냥 눈물이 난 것 같아. 원래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라고 하잖아. 자기도 알지?"


  여자 친구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호르몬 때문이야?"


  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내 신체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내가 잘 우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오늘도 어쩌다 눈물이 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호르몬 때문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여자 친구는 납득하지 않는 눈치였기 때문에 나는 눈물이 난 경위를 말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오늘이 일요일이기 때문이고,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거고, 월요일에는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럼 내일 출근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어. 딱히 커다란 이유가 없으니까 호르몬 문제일 거라고 생각해."


  그제야 여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시 한국 기업의 오사카 지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회사는 출근 오전 8시, 퇴근 오후 6시, 점심시간 1 시간의 업무시간이 기본이었으며, 아침 회의가 있는 날이면 오전 7시에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잔업은 많았지만 잔업수당은 없었고. 나는 경영팀, 기획팀, 물류팀, 이렇게 3팀에 속해있었으므로 업무도 3배였다. 입사 1년 차는 토요일과 공휴일에 출근해야 했고, 나는 당시 2년 차로 주임이 되었다.


  나는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내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은 적지 않게 벌고 있었으니 그 정도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전공도 아닌 일을 하면서 이 정도 급여를 받으려면 이 만큼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는 내게 일이 너무 많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다음 날 할 업무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업무용 휴대전화를 보고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항상 업무를 생각하고 체크하며 지내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일이 많다고 말했을 때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본 기업과 다르니까 한국에 있는 회사원들은 다들 이렇게 지내고 있다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했었다.


 "일 생각하다가 대성통곡을 하는 회사원은 많지 않아."


  여자 친구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휴대전화로 가까운 심료 내과를 검색했다. 일본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심료 내과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예약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는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심료 내과에 가야겠어."

   

  여자 친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 갈 생각을 한 것이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해.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심료 내과에 가는 거야."


  혹시나 내가 상처받을까 봐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해주는 것에 감동받아 나는 또 조금 눈물이 났다.


  병원 예약 어플로 다음 날 퇴근 후 시간에 예약을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날의 업무를 해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몇 달 약을 먹으면 금방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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