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새벽에 여러 번 깼다.
머리는 띵하고 눈이 침침해 뭔가 갑갑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잠을 설쳐서 그런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얼굴은 좀 굳어있고, 아이는 뭐 귀엽고 명랑하다. 엄마라고 아이에게 늘 밝고 너그러울 수는 없는데, 왠지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있는 게 미안해서 눈썹을 한번 올려보고, 침침한 눈도 크게 떠보고, 입가에 미소도 지어본다.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결심한 건, 원부모에게 못 받았다고 느낀 넉넉하고 따뜻한 품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아를 어느 정도 해온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구나 싶다. 일단 '원부모에게 못 받았다'라는 부분부터 틀려 먹었다. 못 받았다는 건, 응당 '받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건 양육에 대한 많은 당위를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나한테 많은 족쇄를 채우게 된다. 동기가 결핍에서 비롯된 것도 지적하고 싶지만, 이건 시작이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마저 나쁠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고. 결국 원부모를 향해 있던 손가락은 나를 향하게 되었고, 어쩌다 그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면 괴롭고 싫다. 가장 미워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의 일부라는 점은... 머리로는 납득할 수 있지만 막상 직접 보면 싫더라. 그래도 결국 그것이 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회피하고 부정할 수는 없다. 좀 더 업그레이드, 아니 더 성숙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게 해야 한다. 이게 내 숙제이다.
어쨌든 하정훈 선생님, 조선미 교수님 같은 전문가분들이 좀 더 힘을 빼고 양육해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그러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어떤 중대결정을 해야 할 때 내가 정말 아이가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자신이 없다. 글쎄, 시간이 흐르면 힘도 더 생기고 대담해질 수도 있겠지. 그 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에게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