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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Mar 16. 2021

장기체류 외국인인 나, 정말로 해외 생활한 것이 맞나?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삶

나는 필리핀에 태어난 필리핀 사람이다. 그리고 2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삶을 흔히 해외 생활, 혹은 외국 생활이라고 한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해외 생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삶을 의심할 때가 있다.


'내 삶을 정말로 해외 생활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외국인으로 살았으니 당연히 해외 생활 맞지 않는가. 틀린 말이 아니다. 고향에 사는 것이 아니니까. 내 해외 생활을 '사람들이 아는 해외 생활'로 보지 않은 이유는 comfort zone(컴포트 존)이라는 영어 단어 때문이다. 단어를 검색하면 '안전지대'라는 한국어 단어가 나타난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벌러덩 눕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밖에 나가면 삶에 지친 친구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집 가고 싶다.'

'집....'


익숙하고 편안해서 스트레스받으면 '집'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게 안전지대다. 구글에서 comfort zone을 검색하면 내 집, 혹은 내 방을 떠오르게 하는 설명을 나열한다. 편안하고 익숙한 상황,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 고향에 도착하면 집 같은 기분이 들고 한국에 있으면 마찬가지로 집 같은 기분이 든다.


한국에서 해외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외국인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대화하면 해외 생활이 모험이고 고향이 안전지대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해외 생활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내용이 많다. 한마디로 해외 생활은 안전지대, comfort zone을 떠나는 모험을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럼 나에게 한국은 어떤 것인가? 신기하게도 comfort zone이다. 고향도 마찬가지다.


해외 생활을 안전지대를 떠나 생존하는 의미로 보면 내 삶은 해외 생활로 보기 힘든 웃긴 결론이 난다. 한국과 필리핀이 모두 집과 같은 존재라서 모험하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환경에 살아가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필리핀과 한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면 비로소 해외 생활을 하는 맛이 생기게 된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를 하지 않은 그런 나라에 살면 더욱더 그렇다.


나에게 한국어와 영어는 모국어처럼 익숙한 언어다. 그리고 한국 문화와 필리핀 문화 사이에 성장했기 때문에 두 나라를 해외로 보기 힘든 상황이다. 머리로는 한국이 해외고 필리핀이 고향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냥 둘 다 내가 왔다 갔다 하는 엄청 큰 집과 같다.


내 삶이 해외 생활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해외 생활이라는 두 단어를 정의하는 기준 때문이다. 물론 그 기준은 내 기준이다. 그 기준은 안전지대를 떠나 난생처음 보는 나라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동안 해외 생활을 그런 의미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을 보고 '난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했어!'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 웃긴 건 내가 쓴 글 중에서 한국 생활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 한국을 여전히 타국으로 보고 있는 동시에 고향을 한국보다 더 타국으로 보고 있는 내 태도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이면 두 나라를 안전지대로 보기 힘들 텐데, 신기하게도 안전지대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필리핀 사람이 아니며 당연히 한국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고향과 한국에 가면 익숙하고 편안하다. 뭔가 서로 맞지 않은 것 같은 나의 태도와 인식을 보고 '외국인의 삶을 점점 알아갈수록 복잡하구나'라는 깨달음만 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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