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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Mar 16. 2021

외국인이 한국에서 보내는 사춘기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삶

내 사춘기의 대표적인 감정은 짜증이다. 뭐만 하면 '아 짜증 나!'가 나온다. 밥보다 많이 먹은 게 짜증이었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불만이 컸다. 내 불만은 정체성과 관련이 많았다.


"짜증 나, 나 왜 외국인이야?"

"짜증 나, 나 왜 고향에 살 수 없어?"


위에 나온 말들은 모두 사춘기 때 짜증을 표현하고 있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맞게 소설 구어체를 썼기에 무난하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반항이 심하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입이 험했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내 인생을 다큐로 찍었다면 --삐 처리를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어른들도 쉽게 감당할 수 없다는 '외국인 인생'을 어릴 때부터 겪었기 때문에 청소년 때 짜증을 험하게 표현했다.


나는 한 번만이라도 소속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 소속감이 무엇인지 몰라서 흐르는 대로 살았지만 커가면서 내 외국인의 삶을 보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도 하고 조부모님의 밑에서도 지내보고 연락을 자주 하는데 나는 2년에 한 번 가족을 볼 수 있어서 가족과의 교류가 어려웠다. 친구들은 자신이 태어난 문화 속에 자라서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나는 이 나라의 외국인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라야 했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눈앞에 보이는 현지인들처럼 가족 모임 자주 하고 싶고 그들처럼 현지인 기분을 내면서 살고 싶었다.


외국인의 삶은 스트레스가 많은 삶이다. 온종일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느껴야 한다. 정신이 괜찮을 때 웃음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 때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무엇보다 현지인 기분으로 사는 것이 뭔지 잘 몰라서 더욱더 힘들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는 이런 삶이 힘들어서 짜증이 많았다. 내가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내 삶이 괜찮지 않을까. 고향에 살았다면 정서적인 안정감이라도 받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사춘기를 겪으면 한 번쯤이라도 그런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정말 누구인가.'


그때의 나는 할 수 없는 대답이라고는 '나는 외국인이다' 밖에 없다. 법적으로 필리핀이지만 스스로 완벽한 필리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소속된 나라가 없는 것처럼 나 자신을 완전한 사람으로 보았다. 정의 내릴 수 없는 그런 불완전한 사람. 그래서 사춘기 시절, 나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이런 나를 어떻게 감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인생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다.


짜증이 쉽게 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후회가 밀려온다. 예민하게 반응할 시간에 더 긍정적인 삶을 살았다면 과거에 덜 힘든 삶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외국인이라는 개성적인 부분을 잘 활용하면 누구보다 즐겁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짜증으로 받아쳤던 내 사고방식을 인정과 긍정으로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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