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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Jan 30. 2021

외국인 중학생, 수련회에 가다: 서당에 갔다 온 일화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일화

중학교 1학년에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 수련회 장소 서당이래.'


친구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가정통신문에 적힌 수련원 장소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서당이라니.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한국 전통 수업 분위기가 떠올랐다. 이어서 회초리 맞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생각났다. 그러한 장면을 떠오르자마자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단체 활동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수련회 참석 여부를 묻는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늘 불참에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었다. 단체 활동을 하면 쉽게 피곤해지고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그렇다. 만약 일 때문에 단체 활동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런데 내게 참석과 불참이라는 선택권을 주면 망설임 없이 불참을 선택할 것이다.


단체 활동을 꺼리는 외국인 중학생이 2박 3일 동안 단체 생활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당연히 속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다. 나는 충격과 공포로 '왜?'하고 울부짖었지만 소용없었다. 참석과 불참이라는 선택지가 있어도 답은 이미 정해졌다. 특별한 사연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참석'이다.



수련회 첫날

버스를 타고 서당에 도착한 순간 아이들이 창밖을 보면서 '우아아아아'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창밖에서 훈장님과 선생님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긴 수염의 훈장님을 본 순간 사극의 세계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린 순간 다시 불안감과 부담감을 느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서당에 갔다 온 기억 중에 두 가지만 뚜렷하게 기억했다. 그 기억은 사자소학을 배운 시간과 명상의 시간 혹은 정좌 자세의 시간이다. 우선 명상의 시간부터 시작하겠다.


'정좌!'


이 소리는 정좌 자세를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예고가 담긴 소리다. 다른 말로 고통의 시간이 왔다는 뜻이다. 강당에 도착 하마자 훈장님에게 정좌 자세를 배웠다. 바른 자세로 양반다리를 하는 것이라 처음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긴 시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니까 온몸이 근질근질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괜히 눈을 뜨고 싶고, 정좌 자세를 하면 다리를 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진심으로 명상을 하고 싶어도 머릿속을 지배하는 잡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정좌 자세로 눈을 감으면 명상을 위한 음악이 흐른다.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음악을 들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자 무덤덤했던 반응이 '언제 끝나'로 변했다.


정좌 자세로 오랫동안 있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명상의 시간을 나 자신과 싸움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노력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집에 가고 싶었던 외국인 중학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외국인, 사자소학을 배우다.

강당에 도착했을 때 신기한 책을 받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큰 글씨의 한자와 작은 글씨의 한글이 나를 반겼다. 사자소학이었다. 훈장님은 사자소학이 무엇인지 가르친 후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아버지 부, 날 생, 나 아, 몸 신.'

'어머니 모, 기를 국, 나 오, 몸 신.'


강당에 모일 때마다 사자소학을 열심히 외웠다. 눈을 감고 그대로 말하기도 했다. 낯선 환경에 쉽게 긴장하고 부담을 느꼈던 나는 사자소학을 열심히 외웠다. 그때 훈장님에게 무서운 말을 들었다.  


'마지막 날에 제대로 하는지 볼 거야. 열심히 외우지 않으면 집에 돌려주지 않을 거야.'


나는 순수하게 그 말을 믿고 사자소학 한 페이지를 열심히 외웠다.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학교 시험 보는 학생처럼 행동했다. '언제 시험 보지?'하고 기다렸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버스 탈 때까지 사자소학 한 페이지 외웠는지 확인하는 시험이 없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이 열심히 하라고 나온 말이었다.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그 말을 순수하게 믿었던 나 자신을 향해 헛웃음을 쳤다.


이게 바로 내가 기억하는 서당에 갔다 온 일화다. 서당에서 받은 사자소학 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방 대청소를 하다가 사자소학 책을 발견하면 '그땐 그랬지'하고 추억을 회상하곤 했다. 책을 펼치면 긴장하면서 한 페이지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재생된다. 지금의 나였으면 예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갔을 텐데. 모든 상황에 속으로 긴장했던 내 모습을 떠오르면서 사자소학 책을 제자리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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