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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메이 Mar 17. 2021

매운맛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매운맛을 무서워했던 과거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의 일화

한국 생활 24년 차 외국인에게 매운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다. 고향의 한인 식당에 가서 떡볶이를 시켰을 때 가족들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그리고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또 감탄했다. 그들의 눈에 내가 마그마를 씹어먹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나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난 어렸을 때 매운 음식을 먹는 순간 물부터 찾은 외국인이었다. 식판 위에 배추김치, 오이김치가 보이면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물병을 꺼낸다.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난 떡볶이의 맛을 인정했지만 내 혀를 괴롭게 하는 매운맛 때문에 물이 필수다. 이러한 내 모습을 본 어른들은 떡볶이를 살 때마다 컵에서 물을 조금 부었다. 맛없게 먹는 방법이지만 과거의 나에게는 떡볶이를 즐길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때 급식을 먹으면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음식을 많이 남기면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운 반찬이 많은 날은 내게 고통의 날이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그 남기지 말아야 하는 음식이 매운 음식이다. 식판 위에 매운 반찬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무조건 물과 함께 먹었다.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물병을 들고 싸우듯이 먹어 치웠다. 내 기억에 매운 음식을 그대로 삼킨 적이 많았던 것 같았다. 이처럼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생긴 초등학교 일화가 있다. 


매운 반찬과 안 매운 반찬이 골고루 나왔던 급식 시간이었다. 그 당시 교실 책상들이 모둠 형태로 되어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내가 식판 위에 맛있는 반찬을 다 먹고 매운 반찬만이 남아있을 때 평소처럼 물병을 꺼냈다. 그때 친구들이 물병을 압수했다.


'딱 한 입만 물 없이 먹어 봐.'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난 딱 한 입만 물 없이 먹어보라는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물 없이 매운 반찬을 먹고 한 번 참았다.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재료 맛과 매운맛이 강하게 느껴서 10초만 참고 물을 달라고 급한 손길을 내밀었다. 내 물병을 숨기고 있던 친구의 등이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애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친구가 처음에 참았지만 툭툭 치는 내 손길의 힘이 점점 강해져서 물병을 돌려주었다.


매운 음식을 잘 먹기 시작했던 시절은 중학교 들어갔을 때였다. 매운 음식을 잘 먹게 된 이유를 모른다. 그냥 평소처럼 살다가 물 없이 매운 음식을 먹고 '어? 나 이제 잘 먹네?'하고 깨달은 것뿐이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매운 음식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었고 편의점에 가서 매운맛 라면을 사서 먹었다. 어릴 때 즐기지 못했던 닭볶음탕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하게 되면 한국의 매운 음식을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은 한식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많아서 고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한국 식당이나 무한 리필 뷔페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심각하게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역시 오리지널 매운맛이 존재하는 한국 식당은 이길 수 없다. 이미 다른 나라에 정착한 내가 취향에 따라 만두도 넣고, 계란도 넣고, 라면 사리를 넣는 떡볶이를 엄청나게 그리워하는 모습이 벌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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