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우리 부모님도 치매일까?
명절 연휴나 어버이날이 지나고 나면, ‘치매 초기 증상’이라는 키워드 검색으로 내 브런치에 방문하는 분들이 많아지곤 한다. 오랜만에 본 부모님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를 때, 혹시 우리 부모님도 치매가 아닐까 걱정을 하며 자녀들이 검색을 해보는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아버지를 통해 내가 겪은 치매 초기 증상을 기록하였다. 치매와 헷갈려하는 건망증과 차이점도 적어보았다.
1. 같은 말과 질문을 반복한다.
“밥 먹었어?” 질문을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받았다. 그리고 치매가 진행되며 질문을 하는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1시간 간격에서, 30분, 치매 중기에는 5분도 채 안돼서 자신이 한 말을 잊고 마치 처음처럼 물었다. 어떨 때는 나와 한참 얘기를 나누고도 내가 다른 방에 있다가 안방에 가면 날 처음 본 듯이 “너 언제 집에 왔어?”를 물었다. 보호자 입장에서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받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다. 가끔은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증세는 치매가 더 진행되면서 차차 없어졌다. 치매 말기로 갈수록 언어능력이 상실되며 말수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타인의 상황을 살피고, 물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 이유도 있겠다.
2. 소지품을 자주 분실한다. 숨겨두고 찾지 못한다.
아버지는 휴대폰, 시계, 지갑 같은 평소 매일 지니고 있는 소지품들을 곧잘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물건을 찾기 전까지는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집안 곳곳을 뒤져서 소지품을 찾아주면 숨을 크게 쉬며 안도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탄하며 자책을 했다.
건망증도 소지품을 자주 분실한다. 하지만 치매와 구분되는 점은, 치매의 경우 분실의 이유가 본인이 숨겨놓고 찾지 못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치매 초기에 막연한 불안과 의심들이 많아지면서 아버지는 누가 자신의 훔쳐 갈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집안 곳곳에 물건을 숨겼다. 돈도 없는 지갑을 소파 밑, 옷 주머니, 서랍 안, 이불속, 베개 등에 숨기고 혼자 찾지 못했다.
3. 하나에 꽂힌다.
아버지가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 “못 찾으면 하나 다시 사면되지.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어도 아버지는 안심하지 못했다. 시계를 찾을 때까지 온통 머릿속은 시계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쉽지 않았다.
자신에게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랬다. 치매가 아니더라도 성향상 이런 경우는 많겠지만, 치매는 그 증상이 더 심했다. 아버지는 술을 먹은 친척분을 말리다가 어깨를 다치는 일이 있었다. 평소에 좋지 못했던 어깨가 악화되어 수술까지 해야 했다. 수술 이후에 이 일을 두고두고 원망하며 화를 쏟아냈다. 듣는 사람이 이제는 그만 좀 하시라고 할 정도로 매일 같이.
이전에 없던 강박적인 행동도 생겼다. 아버지는 문을 잠그는 것에 꽂혔다. 현관문과 창문 등이 열려있으면 불안해하고 더운 여름에도 꼭꼭 문을 닫았다.
4.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 있어?
아버지의 치매를 의심할 때 찾아봤던 글이 있다. 우산을 가지고 갔다가 분실했을 때, 건망증은 문득 ‘내가 우산을 깜박했네. 어디에 뒀지’라고 생각하지만, 치매는 내가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는 자체를 잊는다. 약속을 깜박하고 나가지 못했을 때 상대로부터 전화가 오면 ‘아차, 내가 약속을 잊었네’ 하면 건망증, 약속한 사실을 까마득히 잊으면 치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치매는 망각의 범위가 더 크다. 아버지는 최근에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잊어갔다. 기억해 보라고 얘기를 해주어도 깜깜,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 세탁기 리모컨 같은 쉬운 단어조차 종종 잊었으며 이후에는 세탁기, 리모컨, 밥통의 간단한 사용법도 잊었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잊지 말아야 하는 더 많은 것들을 잊어간다.
5. 기억력뿐 아니라 인지기능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건망증은 기억력만 문제가 생긴다. 치매는 뇌가 고장이 나면서 기억력뿐 아니라 인지기능 자체가 떨어지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어느 시점부터 이전에 해왔던 은행 업무를 혼자 처리할 수 없게 되어서 동생이 동행해야 했다. 창구에서 은행원이 하는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지시하는 것을 이행하기가 어려웠다. 주변 정돈도 잘하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분리해서 넣으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하지 못했다. 주머니에는 버리지 않은 휴지들이 쌓여갔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돈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계산이 힘들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신이 없어해서 집에 혼자 머무르는 일이 많아졌다.
* 그렇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치매를 의심해야 할까요? 병원에 가면 검사하는 항목들 즉 기억하기, 단어 말하기, 계산하기, 어떤 일을 계획하고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기, 정리 정돈하기, 외부 상황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적절하게 판단하고 대응하기,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 길을 기억하는 일 등에 조금씩 어려움이 생겨 ‘이전과 달라졌다’ 혹은 ‘약간 이상해졌다’라고 느낄 때입니다.
* 그럼 치매 치료는 언제 해야 할까요? 치매가 심해져서 뇌세포가 많이 죽은 뒤에는 신경전달물질이 아예 나오지 않으니 치매 치료제를 복용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매는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고, 치료제를 꼭 복용해야 합니다. - 『치매를 부탁해』이은아
아버지에게 잔소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만 좀 똑같은 얘기를 하시라고, 더운데 창문을 왜 닫고 있냐고 환기 좀 되게 열어두시라고, 음식물 쓰레기는 제발 그냥 쓰레기통에 넣지 말라고, 밖에 나가 친구분들도 만나시고 하라고. 나는 아버지가 노력하면 되는 걸 안 한다 생각했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졌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아버지는 점점 울적해졌다.
치매를 빨리 발견하는 건 치매 치료를 위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덜 주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치매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된다. 아버지가 뭔가 이상해졌다고 느꼈을 때, 처음에는 보건소에 가서 체크리스트 형식의 간단한 검사를 진행했다. 정상이었다. 이후 병원에서 치매 검사진행했을 때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며 다시 검사를 했을 때, 결국 치매 판정을 받았다.
*건망증과 경도인지장애가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치매 의심 증세가 계속되면 한번 검사를 받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살피고, 일정 기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경과를 살펴보는 걸 추천한다. 그래야 치매를 초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다.
*대문사진 출처 :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채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