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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un 16. 2023

니 옆에 오징어 저리 치워.

자매공감

   

“야, 니가 왜 그런 앨 만나?”      


동생이 남자 친구라고 나에게 선보였던 사람은 외모도 조건도 성격도 성에 차지 않았다. 니 성격 못 고치면 진짜 결혼 못한다며 악담을 퍼붓기도 했지만, 막상 동생 옆에 선 남자들은 몇이고 다 오징어 같아 보였다. 흥, 어딜 감히. 내 동생이 한참 아까웠다. 여태껏 동생 남친이 맘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남자 친구보다 오히려 동생 남자 친구에 대한 기준이 더 높았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완전 아저씨 같아.’, ‘진심 언니가 아까워~’, ‘야 그냥 헤어져~ 헤어져.’ 

뭐 맨날 헤어지래니 얘는.      



남친과 헤어진 후 치킨 한 조각을 베어 물고서 눈물 콧물을 질질 짜고 있던 내게,    

   

“울지 마 고블린. 니가 부족한 게 뭐 있어? 똑똑하지, 착하지, 예쁘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걱정 마. 넌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 야,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아.” 

“아니야. 정말 너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위로하려고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동생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평소 자주 싸웠지만, 서로 연애를 하면 콩깍지가 씌운 듯 “진짜 니가 아까워~” 멘트를 달고 살았다.           

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 나지만, 언니 동생 사이보다 친구 사이에 더 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시기부터 내 키를 따라잡았다. 동생은 긴히 부탁할 일이 아니면 날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난 동생에게 야, 너 혹은 고블린, 멸치로 불렸다. 고블린은 게임 리니지에 나오는 최약체인 난쟁이 괴물이다. 동생은 나를 꽤 오랜 기간 고블린으로 불렀다. 난 서른이 넘어서야 고블린으로 불리는 것에서 탈출하여 멸치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방을 썼다. 딸만 셋, 나이 차이가 나는 큰 언니는 방을 따로 쓰고 우리는 쭉 같이 지냈다. 작은 방 안에서 우리 둘은, 내 옷을 몰래 입고 나간 너 때문에, 게다가 그 옷에 뭘 묻히고 온 개념 없는 행동 덕분에, 잠 좀 자자 밤에 불 끄는 타이밍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너의 시끄러운 통화 소리, 나도 깨끗하진 않지만 나보다 더한 너의 위생관념 등의 이유로 자주 다퉜다. 심할 때는 한 달간 서로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싸우고 풀고 또 싸우고, 그렇게 부대끼면서 누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자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부모님도 친한 친구도 남편도 아닌 내 동생이다.   

    

친구 사이에서 내보이지 못한 작고 못나 보이는 마음도 동생에겐 솔직히 털어놓았다. 부모님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기억들도 이를 함께 겪은 동생에겐 공감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부족하다 여겨 남들에게 감추고 있던 자신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인 것 같은 나에 대한 한탄도 그러려니 하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는 각자의 지긋지긋한 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대나무 숲이,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가, 안식처가 되었다.    

       


내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던 밤. 동생과 나는 평소처럼 작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동생은 울지 않았다. 울음이 터진 건 내 쪽이었다. 어디 먼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못 볼 사이도 아닌데, 동생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신혼집은 친정집에서 걸어서 고작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 결혼 전에는 결혼이라는 게 하도 크게 느껴져서 내 인생과 가족들의 관계도 송두리째 바뀔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랑 따로 산다는 것보다 동생이랑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그땐 그렇게 슬펐다.           

내 눈물이 무색하게 우리는 결혼 후에 아버지 일로 인해 몇 개월을 같이 살기도 했고, 지금도 거의 매일 통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낸다.     

     

처음에 내 남편 역시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동생은, 결혼 후에는 내 사는 모습을 보며 이런 형부가 없다며 형부에게 잘하라고 날 채찍질한다. 동생은 내 남편의 성품을 믿는다. 그리고 남편의 입장을 대변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내 결혼 생활이 행복하길 바라며. 


“안 되겠다.”

사진을 보자마자 말했다. 동생에게 이젠 눈 좀 낮추라고 말은 뻔질나게 하면서, 실은 내 눈이 더 높다. 동생의 짝꿍은 이모저모 따지게 된다. 절대 포기가 안된다. 내 동생 옆 오징어는 썩 물러가라고 하고 싶다. 

          

내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가 평생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행복해도, 더 잘 살아도 샘내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너 하나뿐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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