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중얼중얼 거친 욕설을 뱉었다. 하기 싫다는 게 많아지고 고집이 세졌다. 아버지가 휘두른 주먹에 나동그라져 있는 나를 보아도 몇 초 안에 자신이 그랬다는 걸 잊었다. 치매는 사람의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뇌를 망가트려 한 사람의 인격을 뒤바꿨다. 병원에서는 폭력성을 제어하는 뇌의 부분이 고장이 나서 그렇다고 했다.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특히 치매 이전부터 폭력성이 있었던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고 했다. 치매에 걸려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본인의 의지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날 사랑했던 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는 건 참 슬프고 서러운 일이었다. 이 시기가 간병 10년의 시간 중 가장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우리 가족이 겪은 이 아픔이 그저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보호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치매환자의 폭력성을 케어하는 방법을 적어본다.
1.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아라.
환자에게 맞는 약, 부작용이 적은 약을 찾아야 한다. 치매 중기. 폭력성, 배회증상 등이 심한 환자들에게는 신경과보다 정신과 진료를 추천한다.
아버지는 치매 초기까지는 신경과 진료를 봤지만 중기로 접어들며 이상증상들이 심해졌고 당시 처방받았던 약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당시 인터넷에서 치매 중기 이상행동이 많은 환자들은 신경과보다 정신과 진료가 도움이 된다는 글을 접했다. 실지로 그랬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동네에 개인이 운영하는 정신과에서는 치매환자를 받는 곳이 많지 않았다.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중에 치매를 전문적으로 보는 교수님들을 찾았다. 이곳은 치매 환자에 대한 많은 진료 경험이 있고 항정신성 약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서도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먹었을 때 부작용이 있던 약들의 목록을 공유했고, 새로운 약들을 시도하며 약용량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했다. 일주 혹은 이주일치를 처방받아서 약을 써보고 부작용을 살피고 다시 약을 조절하는 식으로 맞춰갔다. 확실히 정신과에서는 다른 약을 썼고 효과도 있었다.
<복용했던 약 정보>
아버지는 항정신성 약을 복용했을 때 어떤 약을 먹었을 때는 조금 또렷해질 때도 있었고, 어떤 약은 멍해지고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게 되며 정신이 없어 보였다. 폭력성을 띠는 치매 환자에게 많이 사용하는 쿠에타핀, 트라조돈, 자나팜, 알프람을 먹으면 배가 부풀어 오르고 복통이 생겼다. (*약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버지가 있었던 한 요양원에서는 어떤 약을 썼는지 잘 모르겠으나, 몸에 부종이 생기고 파킨슨 증상처럼 한쪽이 마비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부작용이 덜하면서 효과가 있었던 약은 이랬다.
* 폭력성과 이상행동 조절 – 산도스에스시탈로프람정, 라믹탈정, 보령부스파정
* 수면장애 - 쎄로켈, 아고틴정, 데파스정
사람마다 본인에게 맞는 약이 있고, 맞지 않는 약이 있다. 폭력성이 심할 때는 약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항정신성 약은 부작용이 클 수 있어서 잘 살펴보고 조절해야 한다. 환자의 건강을 망칠 만큼 부작용이 큰 약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2. 싸워봤자 남는 게 없다.
고집불통이었던 아버지랑 참 많이 싸웠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버지도 일부러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거다.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뇌에 문제가 생기는 병에 걸려서 그런 거다.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걸으라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치매환자들은 뇌가 병이 들어서 여러 이상행동들을 하게 되는 것이니 화를 내는 건 의미가 없다. 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머리론 아는데 그런 행동들을 감당하고 수습하는 게 참 미칠 노릇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너무 힘들어서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렇게 하면 고쳐지겠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라도 내 감정을 터트리고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화가 난 표정과 목소리를 들으면 본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알았다. 그럼 더 방어적이 되어서 격한 반응으로 되돌아왔다. 치고받는 몸싸움까지 가면 걷잡을 수가 없다.
보호자가 보기에는 답답하고 참기가 힘들어도 건강에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면, 본인이 원하는 걸 하게 두는 편이 낫다. 무언가에 꽂혀서 고집을 부리는 상황이라면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도 좋다. 또한 거부하는 행동을 줄이게 하는 고민과 여러 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계에 집착하고 자꾸 잊어버릴 때는 같은 시계를 여러 개 사서 두었다. 또 목욕을 시킬 때 아버지가 서 있는 상태에서 옷부터 벗기려고 하면 완강히 거부했는데 이후 의자에 앉게끔 하고 아버지 등을 살살 긁어주며 목욕을 시작하는 것, 물을 바로 뿌리지 말고 따뜻한 대야에 발부터 담그게 하는 것들을 먼저 해주었을 때 반감을 줄일 수 있었다.
3. 보호자 혼자 하는 독박 간병은 위험하다.
치매 간병은 혼자서는 너무 힘들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면 방문요양서비스를 통해서 단 몇 시간이라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가족이나 친지가 있다면 주보호자와 최대한 간병을 분담해서 하고 이것이 어렵다면 주보호자가 환자와 떨어져서 며칠이라도, 단 하루 이틀이라도 쉴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다른 보호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치노사모 카페에 들어가면 우리 집보다 힘든 간병을 하고 있는 분들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런 글을 읽거나 보호자들과 서로 힘든 부분을 공유하면 내 아픔이 조금은 덜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힘들구나, 이게 치매의 공통적인 증세이구나 객관화시킬 수 있게 된다. 부디 혼자서 간병을 감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4. 스킨십이 도움이 된다.
치매 환자는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접촉을 몹시 그리워하게 된다. 2011년에 호주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는 장기적으로 치매 환자에게 매일 10분 발 마사지를 하면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에 따르면, 브리즈번의 한 요양원 입소자들에게 공격성, 배회, 반복된 질문을 포함한 ‘초조 행동’이 있었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훈련을 받은 전문가의 10분 발 마사지로 이런 ‘초조 행동’이 크게 줄었고, 그 효과가 마사지를 중단하고 2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방법은 마사지가 ‘언어 능력’이 감퇴했을 때도 의미 있는 의사소통 감각을 촉진시키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초조 행동’은 대체 약물로 치료하는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아주 심한 경우에는 신체를 구속하기도 하는 반면 마사지에는 장점만 있다. 마사지를 하는 사람이 환자와 눈을 마주치고 짧은 대화를 하면서 피부에 가해지는 감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 웬디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55P, 문예춘추사
평소 아버지의 볼을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행동을 하면 아버지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치매환자도 자신이 사랑받는지 미움받는지 느낄 수 있다. 미움받는다는 느낌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더 부추겼고, 자신이 허용되고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때는 잠시라도 성난 마음을 내려놓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다잡으며 가족을 간병하고 있는 분들 곁에, 회사에서 일을 하는 중에도 식사를 하는 중에도 아픈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묵직한 먹구름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분들 곁에, 오늘은 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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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배경사진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