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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Sep 09. 2023

아빠가 사라졌다.

기차는 내려앉는 어둠에 잡히지 않으려는 듯 내달렸다. 이내 창 밖은 어둑해졌다. 창문은 바깥 풍경을 담을 것이 없게 되자 기차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걱정에 휩싸인 고단한 눈이 보였다. 눈물이 새어 나와도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생과 열차 통로 화장실 앞에서 만났다. 동생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던 장면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만약 이렇게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슴이 뻥하고 뚫어져서 남은 삶 동안 내가 내쉬는 숨은, 밭은 숨이 될 거였다.  

    

“야야, 어쩌면 좋냐. 큰일 났다. 종수, 네 아빠가 없어졌어!”

“네? 아빠가요? 언제요?”

“나랑 거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거든. 일어나 보니 니 아버지가 감쪽같이 없는 거야. 봤더니 운동화가 없어. 이를 어쩌면 좋냐!”

“아빠 전화기는요? 휴대폰 안 가지고 가셨어요?”

“휴대폰은 여기 그대로 두고 갔어. 지금 경찰에 신고하고 종량이랑 밖에 나와서 찾고 있는데,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가 않아.”          


큰아버지는 며칠이라도 본인이 아버지를 돌보겠다고 했다. 형제간의 우애였고, 치매 간병을 하느라 고생하는 조카들을 위한 배려였다. 동생은 전날 아버지를 창원까지 모셔다 드리고 먼저 서울집으로 올라왔던 터였다. 아버지는 일주일 정도 창원에 머물 예정이었다.     


낯선 곳에서 잠이 든 아버지는 홀로 눈을 떴다. 이곳이 어디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혼돈이 온 아버지는 집으로 가겠다며 다짜고짜 집 밖으로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향방 없이 걷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와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나서 가슴이 조여왔다.  

엄지로 검지손톱을 비벼댔다. 고 며칠 쉬어보겠다고, 그렇게 아버지를 혼자 창원에 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서울에 계시도록 할걸. 내가 같이 창원에 내려가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해봤자 쓸모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도착을 얼마 안 남겨둔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찾았다. 찾았어! 니들 아빠 찾았어!”               


맥이 탁 풀렸다. 아버지를 찾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버지가 발견된 곳은 큰아버지 집에서 꽤 먼 곳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직진, 직진만 했단다. 한 건물의 관리인분이 헤매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어딘지 이상해 보여서 말을 걸었다. 집을 찾고 있다며 횡설수설하자 그분은 경찰에 신고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경찰차를 타면서 난 잘못을 한 게 없는데 왜 날 잡아가냐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아버지는 억지로 경찰차를 타고 무사히 돌아왔다.    

     

큰아버지댁 거실에 둘러앉아 친척들과 그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상 위엔 제육볶음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도 잊고 배가 몹시 고팠는지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나는 오늘 아버지를 찾게 된 것은, 필시 우리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아버지에게 보내준 것이라 믿었다. 그 아저씨. 아버지를 발견하고 신고해 준 그 천사 같은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제육볶음을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 또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그때에도 새벽녘 메리야스 차림으로 걷고 있는 아버지를 눈여겨본 어떤 분이 경찰에 신고를 해주었다. 아버지는 두 번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우리에게 돌아왔다. 당사자는 별거 아닌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 두 분은 아버지의 생명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구했고, 아버지와 연을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나는 일을 막아주었다. 지금 우리 가족이 누리는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은 그 두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마치 내 일 같아서, 휴대폰으로 실종 안전 문자가 오면 유심히 보게 된다. 실종자는 대체로 60-80대 어르신들. 안전문자를 클릭해 보면 대부분 주변 이웃들의 제보로 가족들을 찾았다는 소식이 뜬다. 누군가에겐 실종 안전문자가 귀찮은 문자 중 하나로 취급되겠지만 실종자들의 가족에겐 절박한 동아줄 같은 것이다. 또한 그 동아줄을 붙잡고 실종자들을 끌어올려준 제보자들이 존재한다.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시선을 맞추고 그들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은 이들. 영웅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창한 감이 있어도, 이들은 영웅이란 호칭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흉흉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우리에겐  타인의 불행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 휴대폰에 울리는 실종 안전 문자,  21년 통계에 따르면 실종자의 27%는 안전문자를 통해 발견한 이웃들의 제보로 찾았다고 한다.









동생의 유튜브 "아빠와 나"입니다. 좋아요와 구독 감사드립니다. 


https://youtube.com/shorts/P_nymVaORE0?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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