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Aug 22. 2023

아버지에게 삼겹살이 아닌 항정살을 구워드린 이유


한여름 횡단보도 앞,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숨이 턱 막힌다. 잠시 서있는데도 살갗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우리가 여름을 견디는 이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름은 피할 수가 없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고 혹 그 시간이 길어지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불시에 찾아온 이 불행은 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견디는 수밖에. 


예쁜 치매인 줄 알았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3-4년 정도는 기억력과 생활 관리 등에 문제는 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니고 있던 주간보호센터에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고 사람들을 도와 상을 받기도 했다. 예쁜 치매라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땐 내가 치매에 관해 반의반도 몰랐던 거다. 치매는 초기-중기-말기로 진행되는데 지금까지는 고작 초기 단계였을 뿐이었다. 중기 단계로 접어들며 치매는 화알짝 만개하기 시작했다.

     



“나도 밥 좀 줘라.” 

“지금 아빠 밥 먹었잖아. 여기 봐봐. 아빠 밥 먹었어.”

“무슨, 나 밥 안 먹었어. 여기 여기~ 조금만 줘.”

식사를 하고 5분도 안 돼서 또 밥을 찾았다. 한밤중 냉장고를 뒤져 반찬을 집어 먹었다. 이는 식사 포만감을 조절하는 뇌가 고장이 났기 때문이란다. 식사는 위장에서 관련된 일인 줄 알았는데 이 또한 뇌의 기능이 연결되어 있었다. 먹깨비처럼 구는 아버지를 보며, 그래도 안 먹는 치매보단 많이 먹는 치매가 건강상 낫다는 말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수면을 조절하는 뇌의 부분도 문제가 생기며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요하지 않은 장기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장기는 뇌였다. 치매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뇌가 망가지는 중병이다. 뇌가 망가지니 의식주 모든 기본적인 것들이 정상 경로를 벗어나며 폭주했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당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아버지의 폭력성이었다. 아버지는 본능을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에 내몰렸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화음들이 하나씩 쌓이고 무르익어 꽝! 꽝! 졸린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하이라이트 구간 같았다. 만발한 치매. 치매 중기 간병은 단연코 난이도 극강이었다.  아버지의 치매는 6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시작했기에 뇌의 상태가 신체 능력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점, 아버지 간병을 아들이 아닌 딸이 맡았다는 점에서 더 사악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동생과 내가 함께 아버지를 돌볼 수 있다는 거였다. 혼자 아버지를 돌봤다면 필시 뭔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다.      


조퇴를 하고 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한동안 모범생이었던 아버지는, 골칫덩어리가 되었다. 집에 가겠다며 센터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차기를 하던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센터 팀장님은 날 안쓰럽게 보며 말했다.

“힘드시지요?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예요. 이게 딱 꺾일 때가 있거든요. 차라리 그럼 좀 나아져요”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아버지는 이제 주간보호센터의 케어가 어려운 상태였다. 아버지는 집에 홀로 둘 수 없었던 우리는 고심 끝에 요양원으로 모셨다. 요양원에선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듯 약으로 아버지를 절여댈 뿐이었다. 푸릇한 잎들이 노오랗게 떴다. 요양원을 전전하며 흐물흐물해진 배추는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침상 간병이 시작되었다.       


2021년 12월 아버지의 사진.  


수분기를 빼앗긴 아버지는 폭력성이 잦아들었다. 몸을 일으켜 소변을 보러 갈 힘마저 잃었다.  센터 팀장님의 말이 맞았다. 사방으로 뻗쳐대던 이상 행동들이 한바탕 장맛비가 내린 후처럼 잠잠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말은 치매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수도 없이 반복하던 질문은 단어와 언어능력을 잃어가며 끝났다. 종국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될 거라 한다. 집을 나가 정처 없이 배회하던 다리는 근육이 다 빠져 제자리에 서기도 힘들게 되었다. 배회증상도 뇌기능이 살아있기에 무언가를 하는 환자의 최소한의 의사표현일 수 있다 한다(치매 그것이 알고 싶다, 양영순, 2018). 아버지 뇌의 많은 부분은 검게 죽어버렸다. 이제 아버지가 무언갈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치매 말기의 간병은 육아의 과정과 비슷하다. 아버지를 달래서 양치질과 세수를 시키고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확인한다. 아이처럼 분간을 하지 못하고 뭉친 휴지를 먹으려 하거나 똥을 손에 움켜쥔 아버지를 타이른다.      


어제는 아버지네 장을 보다가 아버지가 좋아했던 항정살을 샀다. 삼겹살보다 두 배는 비싼 항정살. 망설이다 앞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더 항정살을 드실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집어 들었다. 활짝 핀 꽃도 여지없이 시들어 떨어지듯이, 기운을 뻐대던 치매는 언젠가 잠잠히 아버지를 바닥에 떨구어낼 것이다.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보면 굴곡진 삶의 주름들을 하나 둘 비워내며, 태초의 고요한 상태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 다 끝날 날이 있을 것이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와 서로 싸웠던 저녁. 불안해하는 아버지 손잡고 걸었던 은행나무 길.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베갯잇을 적시던 밤. 하나님께 올렸던 수많은 기도. 모두어 두었던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듯 폴폴 모두 하늘로 날아갈 날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육체에서 벗어날 때. 아버지는 생 위에서 잃었던 모든 기억을 되찾을지 모른다. 잊었던 자신의 이름, 빛나게 웃던 순간, 아내의 슬픈 얼굴, 애잔한 삶에서 품었던 가난한 희망, 세 딸에 대한 가슴 시린 기억도. 병든 육체에서 놓인 영혼은 이 모든 걸 도로 되찾을지 모른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우리는 무더운 여름 안에서도 기세 좋게 울고 있는 매미소리가 잦아들고 그 공간을 귀뚜라미 소리가 채워갈 걸 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무가 겨울잠을 자는 겨울이 찾아올 것도. 

아픈이의 통증도, 돌보는 이의 아픔도. 이 여름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처럼 지나가고 있으며 어떤 방향이든 끝이 있다. 


동생은 아버지가 조금만 더 버텨주면 치매치료제가 나와서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간병을 한다. 난 그런 희망은 품지 못하겠다. 아버지가 죽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후회와 눈물짓는 일 뿐일까 봐. 힘들어도 함께 있었던 시절이 내 인생에서 좋았던 시절이었다는 때늦은 깨달음을 얻을까 봐.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버지 곁을 찾는다.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

https://youtu.be/V4FwGMW0t8Y

작가의 이전글 유부초밥 하나에 사랑과,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