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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Sep 16. 2023

2년 반 간병비 1억 8백만 원

간병파산 


무거운 공기를 참지 못해 창문을 열었다. 햇빛에 잘 말려진 선선한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갓 찾아온 가을바람이다. 열이 올랐던 마음을 후후 식혀주는 듯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앞집 아저씨는 담벼락에 이불을 자분자분 널고 있다. 아저씨의 대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에게 마음이 압도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었음에도, 밀려오는 시원한 바람에 길게 숨을 내쉰다. 가을이 건네는 위로에 대해 생각한다.      



요양보호사님이 떠났다. 요양원에서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온 후 지금까지, 2년 5개월 동안 상주하며 아버지를 돌보아주셨던 분이다. 우리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갈등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따뜻하게 챙겨주셨다. 요양보호사님이 계셨기에 우리는 아버지를 웃으며 만날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님이 그만두게 된 이유는, 돈 때문이다. 더는 월급 드릴 돈이 없다. 아버지는 24시간 곁에 보호자가 필요한데 정부의 방문요양서비스 3-4시간만 받아서는 동생과 나의 직장과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간병비 전부를 사비로 부담해 왔다. 요양보호사님 월급과 아버지네 생활비를 합치면 한 달에 350만 원-400만 원, 한 달 평균 375만 원으로 계산하면 2년 5개월간 총 1억 8백만 원가량이 들었다. 나와 함께 했지만 동생이 가장 많은 비용을 부담해왔다. 치매 간병 11년 차, 탈탈 털리고 둘 다 거지가 됐다. 통장 잔고 4750원이 날 멀뚱히 바라본다.


      

다른 병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치매 간병은 돈이 많이 든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가끔 상상해보곤 했다. 우리에게 돈이 많았다면 간병 기간 중 해야했던 숱하게 많은 고민과 걱정은 날려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간병에서 중요한 건 사랑과 정성.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간병비, 즉 돈이다.       


요양원에 모셨더면 부담은 덜 했을 거다. 요양원비는 매달 70-100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지금보단 훨씬 낫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건강에 이상이 생겨 돌아온 아버지를 다시 그곳으로 보낼 순 없었다. 집에서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자고 다짐해왔는데... 한계다.

      


우리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요양원밖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많은 자식들이 이처럼 마지못해 요양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겠지. 요양원을 알아보겠노라 하고 있는데, 동생은 다시금 아버지를 위한 선택을 한다. 지금 이 상태로 요양원에 가게 되면 아버지를 하루종일 침대에만 눕혀둘 거라고. 아빠 오래 못 살 거라고. 자신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서 간병을 도맡겠다고 한다. 일은 최대한 재택근무로 돌리고서.      


아버지가 집에서 더 행복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주저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행복을 느껴도 그랬다. 아버지에겐 내가 너무나 필요한 상황 인데, 이 시기에 내가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그리고 내 가정, 남편을 챙겨야 하는 마음이 무겁게 부딪힌다. 아마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망설였을 거다. 내 인생보다 아버지를 우선순위로 둘 자신이 없다. 또 많은 시간 아버지 간병에 매달리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난 이토록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럼에도 난 아버지 편에 서는 동생에게 반대를 할 수가 없다. 우릴 마음 다해 사랑한 아버지를 위해 자녀의 도리를 다하겠노라 나선 동생 앞에서. 나보다 더 많은 고생할 걸 감내하면서도 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겠다는 그 결단 앞에서. 반대할 모진 마음도 갖지 못했다. 동생을 위한 선택이 맞는지, 동생을 위해선 내가 결단을 내려서 아버지를 그만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동생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선생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죄송하고, 정말 감사했어요.”

“내가 고마웠지요. 정이란 게 참... ”

요양보호사님은 눈물을 보였다. 아버지 머리를 쓸어주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낡은 캐리어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요양보호사님이 떠나고 나와 아버지가 남겨진 집은 일순간 고요했다.     


창문을 열고 식사 준비를 했다. 날 보며 환하게 웃는 아버지를 보면 그래 집으로 모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찾아오는 막막함은 막을 도리가 없다. 동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 그리고 지금껏 아버지를 위해 포기해 왔던 것들이 눈을 감으면 떠오르곤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린 또 그렇게. 해보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고, 버틸 수밖에 없어서 버텼다. 그렇다고 항상 무거운 날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어깨가 결리도록 무겁고 처지는 날에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순간이 있었다. 답을 찾을 순 없지만 하루하루는 변함없이 지나갔다. 당시에는 이겨낸 줄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의 일들이 작게 여겨질 만큼 거리가 멀어지면, 아버지를 지켜낸 우리가 보였다. 이 시기도 그렇게 지나가기를. 지금의 우릴 바라보며 애썼다 잘 버텼다 토닥이게 될 날이 올 거라 믿어보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하루치의 무거움만 짊어지고서. 


열어둔 창문 틈새로 가을밤이 내려앉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쟁쟁 울던 귀뚜라미도 이 비를 맞고 있겠지. 나무 위에도 툭툭,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위에 툭툭, 비가 내리고 있다. 소멸의 시간까지 겪게 되는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떠올린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네가, 그 아픔을 겪어내었을 네가 있다. 당신도 쏟아지는 이 비를 끌어안고 살아냈듯 우리도 그렇게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본다.

 


이불을 발끝까지 덮고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주는 위로를 생각한다. 거스를 수 없는 가을의 밤 안에, 함께 아픔을 겪고 있을 존재들이 주는 위로를.   








* 참고영상 : kbs 뉴스 영상입니다.(2022.10월)  0:21초부터 동생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m2xOwj0tSY

우린 이제 청년을 지나 중년의 길로 접어들고 있지만.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9IAw2p6jBk


아빠와 나 유튜브와, 뭉클의 브런치 "구독"과 "좋아요"는 아빠와 딸들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대문, 본문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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