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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Feb 18. 2023

밥은 먹었어?

 

아빠 집에 잠시 들렀다. 전날 간병을 하며 두고 물건을 챙기러 온 참이었다. 다음 행선지로 바로 이동하기 위해서 남편이 골목 앞에 차를 대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 뛰어 들어갔다. 아빠는 침대 위 테이블에서 장난감 젠가를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다. 아빠를 보는 둥 마는 둥 안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챙겨 나오며, 아빠 나갈게~ 내일 다시 올게. 인사를 겨우 하고 나가려 했다. 


“이리 와봐~”


어쩐 일인지 아빠가 나를 불러 세웠다.     

최근 들어 아빠가 이렇게 본인 의사를 선명하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뭔 일이래, 발걸음 돌려 곁으로 갔더니 내 손을 꼭 붙잡는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더니 평소처럼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한다.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말, 모음과 자음이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단어, 1년쯤 됐을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가끔씩 그럴싸한 의사표현을 할 때면 나와 동생은 기뻐하며 잊지 않고 있다가 아빠가 이런 말을 했노라며 서로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럼 그렇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초조해져서 아빠에게서 손을 슬그머니 빼내어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내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밥은 먹었어?”     


정말로 오랜만에 아빠에게 들어보는 말이다. 내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니 바빠 보여서 밥은 먹었는지 걱정이 되었나 보다.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 밥 먹었는지 헤아릴 형편도 아니면서, 내가 누구인지 내 이름도 자신의 이름도 잊었으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마음을 쓰는 지워지지 않은 본능적인 아빠의 사랑이,  '밥은 먹었어' 한마디에 담겨 작은 공처럼 폭하니 내게 안겼다.      


“걱정 마 아빠, 나 밥 먹고 왔어...”

아빠는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다.     


아빠는 나를 좋아했었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세 딸 중에서 나를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자식이라면,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되는 건 넘실넘실한 설렘이 아닌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되는 일, 마냥 기쁘기보단 어딘지 조금은 무거워지는 일이구나. 


다른 사람들이 날 싫어하든 말든 날 욕하든 말든 상관치 않고 아빠는 날 사랑했다. 왜 날 사랑하냐고 물으면 딱 짚어서 명확히 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에게 그다지 잘해준 것도 해준 것도 없어도 뭐 딱히 뛰어난 게 없어도 그냥 아빠는 나를, 그냥 뭉뚝하게 사랑해 주었다.     


치매로 인해 많은 걸 잊고 잃었어도 

오늘처럼 치매도 지우지 못한 사랑이 내보여질 때 

그 마음은 가릴 수도 꾸밀 수도 없었다는 걸 알기에 나에게 오롯이 안긴다.


어젯밤엔 자기 전 아빠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가끔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했겠지? 우리의 삶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걱정거리가 줄어서 좀 더 단순하고 덜 무거웠을 것 같다. 치매는 10년간 우리 가족의 삶의 무게를 바꾸어 놓았지만, 우리가 얻게 된 것이 있다면 오늘과 같이 이따금씩 아빠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뭉클한 사랑이다. 


예상 못한 순간에 다짜고짜 전달받게 되는 아빠의 마음. 

모든 일에 명과 암이 있다면 치매가 우리에게 준 명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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