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운영하는 유튜브에는 악플이 종종 달린다. 아버지 간병 일상을 담은 콘텐츠라 무슨 악플이 달릴 수 있겠냐 싶지만, ‘아버지를 안락사시켜라’, ‘왜 저러고 사냐’, ‘내가 치매 걸린 아버지라면 자살했겠다’와 같은 모진 글을 다는 이들이 있다. 물론 악플보다는 공감과 응원의 글이 훨씬 많아 이를 보며 힘을 내지만, 씩씩한 동생도 악플을 볼 때면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들의 말처럼 치매에 걸린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을까? 치매 환자들은 가족에게 무거운 짐 덩어리 일 뿐일까.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무가치한 존재일까?
나 역시 아버지를 간병하며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단지 먹고 자고 기본적인 행위만 남는 하루살이 인생이 아닐까. 자신의 이름도 잊고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게 된 아버지를 보며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스스로 안락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맞닥뜨린 현실에, 내가 도로 또 눕게 된다는 건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요양원의 한계, 어마어마한 간병비, 긴 시간 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갈등, 내 가족에게 이를 다시 감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얼마 전 27년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2018, 972회 차) 86세의 나이에 매일 같이 할머니에게 바깥공기를 쐬어 주겠다며 휠체어를 밀었다. 동네 방앗간에서 찹쌀을 곱게 갈아다가 직접 죽을 쑤어 밥상을 차렸다.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것을 챙겼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후 스스로 농약을 마셨다. 나 같은 인간 더 살아서 뭐 하느냐고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살려내서 27년이란 긴 시간을 돌보고 있다. 고단한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귀중한 사람이거든. 나한테 와서 많이 노력하고, 젊어서 살아보겠다고 같이 노력하고 살았으니까. 나한테는 은인인 거 아니야.”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 준 사람. 인생의 힘들고 기쁜 순간도 모두 함께했던 사람.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 그 사람이 아프다고 해도 내겐 가장 귀한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가 본의 아니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해 주었다. 아버지는 잊었어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생각을 못해도 잘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도, 스스로 밥을 먹지도 씻지 못해도 우릴 사랑했던 아버지는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요, 가치 있는 존재이다.
할머니가 농약을 들이켰을 때 이 세상을 떠났다면, 할아버지의 삶은 더 가벼워졌을까? 돌봐야 하는 이가 없으니 그랬을지도, 육체적으로도 덜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아로새긴 할아버지의 가슴은 고통 없이 제대로 뛸 수 있을까.
“허수아비 같은 인간이라도 있으니까, 내가 그냥 살지. 그나마 없으면 죽고 없으면 나 혼자 외로워 못 살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미운 이쁜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삶의 이유다. 간병하는 일이 턱 끝까지 숨이 턱 막히도록 힘들 땐 할아버지는 세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품기도 했다. 아픈 이를 돌보는 일은 가끔 죽을 만큼 힘들어서 다 끝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울며 발버둥을 치다가, 그래도 사랑하는 이가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한바탕 더 운다. 너무 힘든데, 내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언제나 아내를 포기할 수 없는 할아버지는 또다시 아침을 맞이했다. 할머니에게 다른 이들이 하는 것처럼 보통의 아침을 만들어주고 싶어 세안과 칫솔질을 해준다. 집에만 있으면 아내가 갑갑하다며 휠체어에 할머니를 태워 다시 문을 나선다.
지난달, 검사를 위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차에 안 타겠다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면서 이미 체력은 반토막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생은 간병으로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해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맥 빠진 눈을 하고는 잠시라도 아빠랑 같이 산책을 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나의 성화를 이겨내며, “언니, 아빠에게 하늘을 보여주자.”라고 했다. “아빠, 저기 좀 봐.” 동생의 손짓에 실로 오랜만에 푸른 가을 하늘을 본 아버지는 “워메~” 하고 감탄사를 외쳤다.
아버지가 내일은 이 하늘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상쾌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기를. 평범한 행복 안에 아버지가 잠시라도 머물기를 동생은 바랐던 거다. 사랑하는 존재에게 주고 싶은 보통의 바람, 하늘, 나뭇잎, 햇살. 숨이 차올라도 아내의 휠체어를 밀던 할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치매에 걸린 걸 알고 농약을 마셨던 이유, 일기장에 매일같이 딸들에게 미안하다 써내리면서 차마 죽지 못하는 자신을 탓한 아버지의 이유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픈 당신 자신보다 더 당신이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짐이 되는 것도 맞고, 어떤 때는 고집불통 당신이 밉기도 하지만 여전히 예쁜 구석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많이 아파 기나긴 세월 간병을 해야 할 때, 아픈 이가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 더는 죽음이 아니길 바란다. 그 아픈 이에게 안락사나 죽음을 권유하는 사회가 더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른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떠오르는 유일한 답이 그것뿐이기에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아픈 이와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덜 미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러한 돌봄의 조건을 함께 찾고 만들어가면 좋겠다.
*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27년간 돌본 남편의 영상 다시 보기
https://programs.sbs.co.kr/culture/whatonearth/vod/69345/22000259059
* 동생이 운영하는 "아빠와 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7UQlI05Rf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