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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May 29. 2023

유부초밥 하나에 사랑과, 아버지,

     

대체휴일이 된 월요일 아침. 

오늘은 내가, 내일은 동생이 아버지 간병을 하기로 했다. 남편이 운동 가기 전 아버지 댁에 태워주겠다고 했다. 휴일을 맞이한 남편의 세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호~호~호~호~”알 수 없는 노래를 불러댔다. 도대체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 남편은 그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차를 타자마자 카오디오를 켰다. 


“얘네가 아이브야?” 

“아니~ ---- 이야.”(기억이 나지 않는다. 빅뱅 이후 아이돌 이름은 포기한 지 오래다.)      


아침형 남편의 업된 텐션 덕에 흥겹게 아침을 시작했다. 아버지 댁으로 배송했던 배추김치 한 통을 차에 실어주고 남편과 인사했다.  

“날씨가 좋다. 내일 봐~!”      


아버지는 아직 자고 있다.      

“오늘은 둘째 딸이 왔네요. 남편 쉬는 날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유부초밥 만들어둔 거 있어요. 밥통에 밥도 다 해뒀어요."

"와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요양보호사님을 보내드리고 냉장고 안을 둘러보았다. 한 주간의 식재료와 필요한 물품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버지가 잠에서 깼다. 물을 한잔 드리고 창문을 열었다. 이틀간 비 내린 후라 공기가 상쾌하다. 맞은편 집 작은 계단 앞에 백구 한 마리가 시큰둥한 얼굴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다. 

“아빠 아빠, 저기 좀 봐봐.”

창밖을 가리키며 소란을 피웠으나 백구도, 아버지도 영 관심이 없다.      


목욕부터 시켜드렸다. 아버지는 아침이라 정신이 더 없는지 목욕 의자에 가물가물 앉아있다. 양치질까지 개운하게 시키고 늦은 식사 준비를 했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그릇 하나에 유부초밥을 몇 개만 덜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반찬으로 간단하게 김치와 콩나물만 꺼냈다. 


새콤 달달한 유부초밥을 아버지는 잘 드신다. 둘이 열심히 먹다가 초밥 한 개가 남았다.      

아버지가 유부초밥 하나를 밀어두곤 밥알 부스러기를 싹싹 모은다. 



’이건 나 먹으라고 하는 건가?‘ 밥알을 모아 맛있게 먹는 아버지를 보니, 말은 안 했지만 날 위해 남겨둔 게 맞는 것 같다. 


남은 유부초밥 서너 개를 더 데워서 내왔다.  또 한 개가 남았다. 

젓가락으로 집어 아버지 쪽으로 밀었다. 

“너 모자라잖아.”  

“아냐 아빠. 아빠 먹어.” 

내가 웃으면서 눈짓을 하니 “먹어 그럼?” 안심하고 입을 벌렸다. 

내 이름도,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내게 먹을 걸 양보해 주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다. 


밥과 분리된 초밥피 하나가 덜렁 남았다. 아버지는 한참을 젓가락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그마저 반으로 갈라냈다. 그러더니 반쪽을 내 쪽으로 밀어준다.      



기특하다. 자식이 부모님에게 이런 표현은 적절치 않은 걸 알지만, 아이처럼 된 아버지가 날 배려해 주는 모습이 실로 기특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좋아하는 만화 '콩순이'를 보다가 낮잠에 빠져들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인과 식사를 하고 관악산에 혼자 가고 있는 길이라고 한다. 적적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조금 있다가 관악산 계곡에 발을 담근 사진을 보내왔다. 집에 가자마자 발을 꼭 씻으라고 했더니 “어~ 알았어. 잔소리 바가지.”  야유를 보내며 대답한다.


“아빠는 지금 잠들었어. 그런데 선잠을 자나? 자면서도 하품을 한다~”

“아버님 안 주무시면서 일부러 여보 앞에서는 자는 척하시는 거 아니야? 

”하하. 뭐? 내가 잔소리하는 거 듣기 싫어서 아빠가 자는 척한다는 거야? “     


남편이 낄낄 웃는다. 잔소리하는 내가 없어서 남편도 모처럼 휴일 같은 휴일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잠든 틈에 글을 쓴다. 이 시간은 내게도 휴식시간이다. 유부초밥을 떠올리며 혼자 웃음 짓는다. 그릇 한 개로 같이 먹길 잘했다. 이렇게 아버지 곁을 지킬 힘을 또 얻었으니.  

아버지도 나도 잠시 휴식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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