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간밤에 목욕하는 것으로 요양보호사님과 실랑이를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아빠는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빠는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 벽에 붙어 있는, ‘낙상 주의’ ‘소지품 분실 주의, 병원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등의 안내 문구들을 얼기설기 반복해서 읽었다.
13시.. 15시.. 18시 30분...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 시간은 아직 한참인데, 햇볕이 들지 않는 응급실은 온종일이 곤한 밤 같았다. 날이 선 의료진들의 목소리가 둔탁한 공기에 균열을 냈다. 어둑한 형광등 아래 커튼으로 둘러쳐둔 우리의 작은 공간에는 낯선 이들의 앓는 소리가 스몄다. 치매로 인해 여기가 어디인지 모른 채, 꿈벅이고 있는 아빠의 눈이 이곳에 있는 어느 것보다 가장 맑고, 밝았다.
요추 1번이 골절되었다. 수술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MRI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참을 움직임 없이 기계 안에 있어야 하는 MRI 검사를 치매 환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없었다. 검사를 위해 수면제를 투여받아 잠시 잠들었던 아빠는 깨어난 후 새벽 내내 잠들지 못했다. 나 역시도 곁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허, 아빠 이거 자꾸 뜯지 마, 링거 바늘 위험해. 가만둬. 하지 마.”
찰나, 링커 바늘이 떼어지며 하얀 시트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여기에 소변봐. 아빠, 여기에! 아하 정말. 여기 통에 싸면 돼!”
속옷을 벗기고 소변통을 대려고 하면, 속옷을 내리지 못하게 꽉 움켜쥐었다. 그러는 사이 참다못한 소변이 새어 나와 속옷과 옷가지들, 시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옷과 시트를 여러 번 갈았다.
“시펄 내 팔자야. 시끄럽게 잠도 못 자게 그래!”
아빠와 내가 소란스럽게 하자 옆 커튼에서 남편 수발을 하던 할머니의 욕설이 들려왔다.
할머니의 듬성 듬성한 머리는 볼품없이 퍼석였다. 비쩍 마른 몸이 스스로를 건사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안돼 안돼.”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는데 왜 또 그래? 여기 선생님~ 여기 좀 와보세요.”
할아버지도 치매인 듯했다. 할머니는 이상행동을 하는 할아버지를 제지할 힘이 없어 간호사를 연신 불러댔다.
오늘 응급실 내 중환자 구역에는 유독 나이 드신 환자분들이 많았다. 잠시 아프다가 개선될 희망이 보이는 환자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병원에 와야할 것 같은 어르신들. 그리고 이들 곁에는 환자의 아프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듣는 것이 힘겨워 보이는 보호자들이 함께 있었다.
옆 옆 커튼에서는 세상 풍파를 다 겪은 것 같은 아주머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그러니깐 식사를 잘하셔야지. 왜 식사를 안 해? 아빠가 힘들겠어? 아님 이렇게 일하다가 달려온 딸이 더 고생스럽겠어?”
“아빠, 첫째 딸과 둘째 딸 중에 누가 옆에 있어 주는 게 편해? 첫째 딸이지? 첫째 딸이 더 편하지 않아? 언니한테 오라고 할까?”
둘째 딸로 추정되는 아주머니의 속 보이는 뻔한 질문에 피식 자조적인 웃음이 났다.
뭐, 나라고 뭐 다를 게 있나.
이때, 둘째 딸의 질문에 대한 할아버지의 대답이 또렷이 들려왔다.
“누구라도 상관없어. 곁에 있어주면.”
가족들에게 짐이 될 것을 알지만 누구라도 아픈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내 이마 한 번 쓸어 주는 사람 없이 홀로 아픔을 견디고 감당해야 하는 것은 젖은 새처럼 외롭고 서글프다. 푹 가라앉은 몸을 홀로 응급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이고 있으면, 창백한 쓸쓸함이 그 몸과 마음을 얼마나 시리게 할까. 그 절박함을 아니깐. 그들 곁에 있기를 선택한 보호자들이 있다.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아니깐,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과 싸우면서도 아픈 가족의 곁을 지킨다.
치매 간병 10년 차. 간병을 하면서 힘든 것 중 하나는, 자책이었다.
꿈벅 꿈벅. 인생의 일들을 모두 잊고 자신이 박종수인지 박장수 인지 헷갈리는 머릿속. 생각을 끄잡아낼 힘도 이어낼 힘도 없이 이렇게 더 삶을 이어 가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건방지게도 아빠 삶의 이유를 내가 물었다. 가끔 아빠가 이 세상에 없는 날에야 나는 내 인생을 더 가벼이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면 난 정말 못된 년이구나. 진창 같은 내 마음을 보며 스스로 나를 찔러댔다. 만약 누군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 사람에게 ‘그럴 수 있어. 너도 힘드니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야’ 했겠지.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 말이 참 안 나왔다.
‘누구라도 상관없어. 곁에 있어주면.’
할아버지의 대답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언니를 불러다 주겠노라 얘기하는 둘째 딸이었지만 응급실로 달려온 것은 첫째 딸이 아닌 둘째 딸이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남편 곁에 있는 건 늙은 아내였다.
나는 완전한 보호자를 꿈꿨나 보다. 언제나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하게 간병하는 모습을 기준으로 세우고, 그렇게 될 수 없는 나를 괴롭혔다.
부모님을 완전하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했다.
부모님도, 나도, 일개 완전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배우자도, 완벽한 자녀도 없다.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완전치 못한 모습으로 서로의 곁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기를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의무감뿐이라고만 할지라도, 괜찮다. 아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을 혼자 두지 않기 위해 나를 이겨가며,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빠는 나 없인 못 살 것 같으니 지켜야 하니깐.
내 마음이 요동치고 벗어나고 싶고 힘들어도. 애써서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고, 애써서 돌봐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렇게 보호자의 자리를 지킨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고단함을 인정하자. 그 고단함을 느낀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자리에 있으니.
- 2021년 12월 아빠의 응급실 입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