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가족을 간병하는 카톡 오픈 채팅방 대화에 4년째 참여하고 있다. 병원 정보나 간병 대처법 등을 서로 공유하고, 간병의 일상과 마음을 서로 공유하는 방이다. 참여하는 인원은 100명 정도다. 같은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애정 어린 조언들이 오간다.
얼마 전, 창에 처음 들어온 분이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현재 치매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단계인 듯했다. 다른 형제자매가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간병을 도맡게 되었고, 집에 요양보호사분이 오셔서 함께 간병을 도와준다고 했다. 지금껏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없었는데, 이렇게 간병을 하며 함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다고 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그분에게서 아버지의 증상이 심해져 함께하던 요양보호사분이 그만두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고생해 온 아버지를 간병할 수 있게 된 감사함을 말하던 그분은 어려워진 상황 탓인지, 조금은 솔직해질 수 있어서인지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40대 초반 아직 한창 일할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을 하며 경력단절이 되어서 앞으로 언제 어떤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현재 직장도 없고, 결혼에 대해서도 암울한 마음이 든다는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눈을 떴다 감기까지 하루의 시간 동안 아픈 아버지 곁에 있다. 참기 힘든 치매의 반복적인 증상, 늘어나는 아버지와의 실랑이,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미움과 원망, 자기 상황에 대한 한탄. 그의 심정과 상황은 익숙한 것이었다. 우리 집도 비슷했고, 다른 집들도 그랬다. 그가 카톡방에 처음 들어와 감사와 좋은 말만 했던 때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치매간병을 혼자 도맡고 있는 그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대화가 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집에서 오랜 시간 아버지를 간병한 우리 자매에게 효녀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난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원치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마지못해서 간병을 했다. 효녀라는 말에 끄덕일 수 없는 건, 간병을 하며 느꼈던 괴로움,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랐던 마음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 곁에서 이틀 밤만 잠을 못 자면 그다음 날 아침에는 아버지에게 짜증이 났다.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앉히고, 기저귀를 교체하느라 침대 위에서 아버지를 위로 당기고 옆으로 밀며 어깨와 허리가 아픈 날은 고집을 부리는 아버지가 너무도 미웠다. 그 전날은 웃으며 넘겼던 행동을, 내 몸이 피곤하면 제발 말 좀 들으라며 소리쳤다. 그러한 나를 알기에 내가 결코 효녀라는 말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간병 카톡 창에 있는 치매 가족을 간병하고 있는 백 명의 사람들에게 효자, 효녀라 누군가 말한다면 아마 이를 인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아버지의 요양원에 들러 식사 수발과 운동을 시켜드리고 돌아오는 분도, 오랜 시간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홀로 노모를 모시며 살아온 분도,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을 혼자서 돌봐야 했던 한 청년도 자신을 효자라 생각지 않았다.
부모님을 쓰다듬고 사랑한다 말하는 마음도 진심이지만, 정반대의 마음도 부지기수로 든다. 부모님이 지금껏 날 위해 희생하였으니 나도 그 은혜를 갚는 거라 생각하지만, 문득 부모님을 위해 포기한 게 많은 자신의 인생이 처량하고 막막하다. 두 마음이 시소를 탄다. 널을 뛴다.
간병을 하며, 간병을 하는 많은 이들과 대화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이러한 두 마음이 공존하는 게 일상이며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미숙하고 힘든 것처럼, 자식도 처음 하는 부모님의 보호자 노릇은 당황스럽고 힘들다. 사랑해도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건 무겁다. 그게 응당 당연하다.
사랑과 감사만으로 부모님 간병을 해내는 사람을 효자라고 한다면, 우리 카톡방에는 그런 효자는 없다. 두 마음이 싸우며 이겨가며 부모님 식사를 차리고, 씻기고, 찾아가는 이들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