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호
이렇게 빨리 1년이 지나가버릴 줄은 몰랐다.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내가 불쌍하실까?
불쌍함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제조 일자 2017년 6월 23일. 실제 제조 일자는 2015년 3월 어느 날.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오른. 유효기간 임박. 아주 임박한 인간. 딸내미. 백수. 골칫거리. 막내. 불딱지.
사실 나는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인생 망했구나, 생각하며 눈물 흘리며 잔 적은 몇 번 있어도 불쌍하진 않았다. 출근하시던 아버지께서 날 보며 불쌍한 것, 혀를 차셨을 때는 되려 내가 왜에,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데 안심이 됐다.
나 불쌍한 거구나.
불행한 게 아니라 불쌍한 거.
뭐가 다를까. 사전적인 정의를 떠나서, 불행은 옴팡지게 기이인 시간 재수 없는 느낌이라면. 불쌍은 한순간일 것 같다. 한순간 느끼고 사라지는 감정. 그래서 안심이 됐다. 거기에 불행은 오로지 그 책임이 나인 것 같은데 불쌍은 꼭 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서 누군가 도와줄 것만 같은 어드벤티지를 얻은 느낌이었다.
불쌍하다는 말도 위로가 될 수 있구나. 다음 날 닫힌 내 방문 틈 사이로 아빠의 한숨소리가 푹푹 나를 찔러댔지만 그래도 난 불쌍한 딸이니깐. 아직은 불쌍함의 유효기간이 남았을 거야, 생각했다.
문을 잠가도, 꽁꽁 싸매도 막지 못하는 것이 있다. 소리. 소리는 막지 못한다.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어도 그 아주 작은 틈새로 들려오는 소리들이 꼭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내 방문 앞을 지나가는 소리에 민감하다. 아빠의 작은 한숨소리, 발바닥이 바닥에 달라붙어 내는 쯔억쯔억한 소리들이, 더욱 내 소리는 숨기고 문밖 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 한숨이 향하는 곳이 내 방 앞이 아니기를. 아니었을 텐데.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아니어도 맞아도 그것은 이미 내 틈을 넘어온 소리다. 소리가 아주 작은 틈으로도 들어오는 것처럼. 그 소리들은 내 허점 사이사이로 잘도 들어온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금방 울어버릴 것 같다. 이게 우울증인가? 온몸으로 하는 양심선언일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2018년 여름에 적어 놓은 이 글을 2년이 지난 지금 마무리해본다. 나는 돌아왔다. 냉동실 안 유효기한이 지난 냉동만두를 왜 버리지 않았냐는 내 말에 냉동식품이라 괜찮다던 엄마 말씀 따라, 유효기한이 한참 지났어도 아쉬운 대로 방치되었던 냉동식품과 오랫동안 방안에 방치되었던 불쌍한 나는 다를 게 없었으니깐.
괜찮다고 무리해서 대구로 떠났다가 1년이 지나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쌍함의 유효기간은 영원하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불쌍하다는 말을 뒤집으면 한심하다는 말이 될까 봐 그 말에 안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방치하지 않으면 된다. 꾸준히 글을 써서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둘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