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은 언제나 옳다
나는 무계획 여행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여행자들에게는 개소리라고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계획을 오랜 시간 동안 선호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달간의 계획을 세우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부터 무계획 여행으로 빠져들었다.
그때부터는 괜한 부담이 없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좋으면 얼마나 머물러도 상관없었고,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짜증 나는 곳이라면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괜한 부담이 없었다.
더 큰 이유를 하나 더 뽑을 수 있다.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를 경험하는 것이다.
태국의 송크란, 독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라남도 신안의 달집태우기 등 국내외 할 것 없이 전혀 계획 없이 떠났다가 우연히 경험을 했다.
나의 61번째 나라 미국이다. 사실, 미국을 여행할 기회는 캐나다에서 공부하던 학창 시절부터 많았다. 몇 년간 살았던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미국은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은 여행자의 삶을 입문한 지 9년 동안에도 딱히 호기심이 자극시키지 못했다. 그런 내가 미국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주 간단했다. 남미일주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미국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저 나에게 미국이란 나라는 남미로 향하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 여행에 대한 계획을 전혀 하지 않았고 특별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무계획 여행에서 또다시 색다로운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남미로 향하는 관문으로만 취급했던 미국에서 말이다. 미국의 첫 번째 방문 도시는 천사의 도시라고 불리는 로스앤젤레스다. 천사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곳은 여행 시작부터 이상했다. 도착하고 난 뒤부터 대포를 터트리는 소리가 잦게 들렸기 때문이다.
사이렌을 켜고 바쁘게 달려가는 경찰차와 소방관들은 내가 예약한 할리우드 숙소 인근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블 캐릭터처럼 코스프레한 사람들,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사람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서 자신의 스타를 찾는 관광객까지. 너무나도 태연했다. 누구도 저 대포 같은 소리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만 유난을 떨고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겁먹고 숙소에 틀어 박힐 수 없었다. 애초에 미국은 남미로 향하는 관문이었기에 일주일밖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로스앤젤레스는 3박 4일 일정이었다.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던 찰나, 한국에서 아는 동생이 보여준 라라랜드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래! 거기 가서 노을이나 보면서 시간 보내다가 일찍 돌아와서 푹 쉬자!"
그렇게 떠난 곳은 영화 라라랜드의 실제 배경지인 그리피스 천문대였다. 바로, 이곳에서 운명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미국에 받았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푸른 하늘, 하얗고 거대한 그리피스 천문대, 들떠 있는 사람들의 조합은 마치 이곳이 천국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천문대의 맞은편에는 영화에서만 보던 'hollywood sign'을 볼 수 있었다. LA와 Hollywood를 상징하는 할리우드사인은 간단한 눈요기와 더불어 반가움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천문대에서 볼만한 것이 더 있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니 천문대 아래로 내려가는 비포장도로가 보였다. 시간도 넉넉하고 딱히 그리피스 이외에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비포장도로로 걸어내려 갔다.
100보가량 걸어갔을까?
조금씩 사람들이 보였다. 내려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언덕 끝자락에 앉거나 서있었다. 심지어, 본인의 캠핑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언덕길에서 바라보는 LA의 경치는 광활한 것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죽치고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덕 아래로 걸어내려 갈수록 쿵! 쿵! 아주 미세하게 다시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얘네들 안전불감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 7월 4일, 총소리. 3가지 키워드로 쳇지티피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은 '미국 독립 기념일'이었다. '4th of july'로도 불리는 이 날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열리며 이른 오후부터 불꽃놀이와 총소리로 행사를 개최한다고 했다. 또한, 미국인들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이 날을 기념하며 즐기는 매우 가치 있는 하루라고 했다.
챗지티비의 답변은 괜한 설렘을 줬다. 밤이 되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그런 설렘 말이다.
하지만, 밤은 빨리 찾아오지 않고 불꽃은 파란 하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저 쿵! 쿵!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선선했던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 가며 밤이 다가왔고 보이지 않던 불꽃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펼쳐진 불꽃축제 분명히 아름다웠지만 또 다른 의미로 신선했다.
8시 30분 무렵이 돼서야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고 크고 작은 알록달록한 불꽃들이 미국 하늘을 마구 찔렀다. 찌르면 찌를수록 사람들의 환호는 커져만 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는
아름답다는 시각적 포만감과 동시에 재미난 대결이 연상시켰다.
굵고 짧은 광안리 불꽃축제 VS 길고 얕은 미국 불꽃축제
쓸데없는 상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더욱 여행지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불어넣어 준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남미일주의 관문 정도로 여기며 큰 의욕 없던 로스앤젤레스. 첫날부터 무계획의 묘미를 실천하게 해 준 이곳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