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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환 Jul 19. 2023

오사카에서 랄랄라

하고 싶은 말_이석훈

어느 날, 듀엣가요제라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에서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왔다. 음악 경연에 참여해 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알려준 연락처로 당장 전화를 걸었지만 이내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당장 다음 주 출연을 원했지만 나는 일본에서 엄마와 가족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노래를 좋아해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매주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결실을 드디어 맺었는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일본이라니. 여행을 접고 돌아갈 수 있었지만 엄마와의 단 둘이 여행이라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우리는 오카야마에서 간사이 여행을 위해 오사카로 향했다. 신칸센에서도 엄마와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은 나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다녔다. 밤이 돼서야 도착한 오사카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엄마의 캐리어가방과 나의 배낭을 메고 출구 나오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저쪽에 잠시 가보자”


도착한 그곳에서는 엠프와 마이크, 앨범이 가지런하게 놓인 테이블 그리고 여성보컬이 있었다. 일본인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건 처음이라 신선한 시선으로 그녀의 음악을 들었다. 몇 곡이나 들었을까? 듣다 보니 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솓았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는 아쉬운 감정과 속상한 마음이 터져버린 것일까?


“엄마! 나도 한 곡 해볼까?”

“물어봐라.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지.”

엄마도 여행 속 그럴듯한 경험이 기대되었던 것 같다.

“저기요. 제가 노래 한 곡 해도 될까요?”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보컬에게 제안을 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래를 한다고? 너 노래 잘해?”라며 짧은 영어로 나에게 다시 되물었다.  번역기로 일본어를 전달하는 것보다 영어가 의사전달하기 편했기에 번역기를 꺼버리고 그녀에게 나의 목소리로 답변을 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나의 버스킹 동영상 보여줄게”


그녀는 한 두 개 영상을 본 뒤 흔쾌히 수락했다. 곧바로, 나의 핸드폰에 저장된 MR을 엠프에 연결한 뒤, 노래를 준비했다.

나의 선곡은 이석훈의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석훈은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던 SG워너비의 멤버 중 한 명이다.

당시, SG워너비 새 멤버 오디션에서 5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데뷔한 그는 스위트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감미로운 중저음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본인을 알렸다.

  그런 그의 노래를 선곡으로 뽑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무 많이 연습한 노래였기 때문에 기복 없이 안정적인 발성법으로 곡의 최고음을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내지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 OST에서 자주 들을 법한 그런 발라드였기에 충분히

듣는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


                                    이석훈


그대라서 다행이라는 말
그대라서 행복하다는 말
나는 그대라서
늘 벅차오른다는 말
내겐 차고 넘쳐서 미안하고
참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늘 그립다는 말 곁에 있으란 말
그댈 만난 건 기적이라는 말
세상에 휘청이고
눈물이 흐를 때도
나는 영원토록 그대 곁을
지키고 싶다는 말

기억나니 처음 손 잡던 날
기억하니 널 품에 안던 날
너의 그 미소에
가슴이 잠 못 이룬 날
내겐 분에 넘쳐서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던 날
사랑한다는 말
늘 그립다는 말
곁에 있으란 말
그댈 만난 건 기적이라는 말
세상에 휘청이고
눈물이 흐를 때도
나는 영원토록
그대 사랑하고 싶어
지켜주고 싶어 바라는 것 없이
나 그대라는 꿈을 꾸고 싶어
나의 삶의 전부라
말하고 싶은 사람
그댄 영원토록 내가 사랑할
유일한 한 사람
너에게만 나 하고 싶은 그 말


노래가 끝난 직후, 일본인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과 함께 두 눈을 떴다.

오른쪽에서 어느 아저씨가 박수를 쳤다.

"짝짝짝"

2~3초 흘렀을까?

한 두 명씩 박수를 치더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마이크의 주인인 여성보컬도 '스고이'를 연신 외쳐줬다.

기분이 참 좋고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이크를 건네고 엄마에게로 가려던 찰나,

가장 먼저 박수를 쳐준 아저씨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비록, 어눌한 말투였지만 말이다.


"저는 제일교포입니다. 한국 노래 참 좋아해요. 근데 당신 노래 너무 잘했어요.

  한국 노래 여기서 들을 수 있어서 참 반가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악수를 청하는 그에게 나 역시


'아리가또' 보다는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다시, 나는 엄마와 원래 우리의 계획대로 숙소를 찾아갔다.

길을 걷던 도중, 엄마는 "노래 긴장 안 하고 잘하던데? 수고했다."라고 말했다.

표현은 크게 안 하시지만 처음으로 아들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대견해하셨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비록,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는 못 나가더라도,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한테도 박수받고

엄마한테 칭찬도 듣고

또, 단 한 명의 사람에게도 좋은 추억을 남겨줬고. 그거면 됐지. 그러면 됐지.'라며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렸다.

사실, 경연 프로그램에 나간다고 내가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래서, 더욱 일본 오사카에서 부른 단 한곡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

나에게 버스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래를 점수로 매기는 행위가 아닌

깊이 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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