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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식이 May 20. 2020

전라도에서  자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누룽지

그리고 특별한 게장간장

우리 집은 전라남도 순천이다. 

지금은 서울에 와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고향에 가면 배 터지도록 전라도 음식을 먹고 온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 사는 사람 냄새나는 집이었다. 할머니, 고모, 엄마, 아빠,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형제가 4명이었다. 그러니 언제나 음식을 하는 양이 많았지만 먹는 것은 전쟁의 순간이었다. 소시지라도 있는 날에는 서로 밥 밑에 소시지를 숨겨두고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눈치 싸움을 했었다. 소시지 하나 때문에 형제간에 의가 상하는 날이 참 많았다. 


서울 와서 느꼈지만 할머니와 고모의 음식 솜씨는 정말 수준급이었다. 기본 장들도 집에서 손수 담그셨고, 직접 미꾸라지를 갈아서 추어탕을 해주실 정도였다. 매번 재철 나물들을 식탁에 올리고, 전라도 답게 김치는 배추, 무 김치는 기본 옵션에 꼬들빼기, 열무김치, 물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 제철에 맞게 무쳐서 올려주셨다. 무엇보다 생선요리도 많이 해주셨는데 통통한 갈치구이를 잊지 못한다. 서울에서 삐쩍 마른 갈치를 처음 봤을 때 '아 서울은 눈 뜨고 코베인 다더니 생선도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집밥이 더욱더 간절해졌었다. 기본 반찬들이 맛있는데 여기에 깊은 맛을 자랑하는 국물에 고기반찬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하지만 진수성찬 앞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누룽지였다.

우리 집은 압력 밥솥으로 밥을 할 때가 많았다. 전기밥솥 밥보다 훨씬 맛있다고 해서 무조건 압력 밥솥으로 밥을 하고, 남은 밥만 전기밥솥에 보관하셨다. 압력 밥솥으로 밥을 하면 증기가 빠져나와 뚜껑에 있는 추가 흔들린다. 그럴 때 나는 치직 치직 소리로 밥이 거의 다 되었음을 느낀다. 아침에도 압력 밥솥으로 밥을 해주셨기 때문에 학창 시절 내 모닝콜은 압력 밥솥에서 나는 소리였다. 최종적으로 불을 끄고 추를 아예 눕혀서 증기를 길게 빼는데 그때 엄마가 뜨거우니 저리 가라고 해도 괜히 그 순간을 보는 게 좋았었다. 압력 밥솥으로 갓 한 밥을 한 술 뜨면 정말 밥이 꼬들꼬들하면서도 촉촉하고 맛있다. 그냥 밥만 먹어도 맛있었다. 그런데 나는 밥보다 그 밑에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누룽지를 참 좋아했다. 식혜에 밥알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나는 누룽지도 밥알이 엄청 불어서 밥알과 물의 경계가 애매한 정말 불어 터진 죽같이 끓여진 것을 좋아했다. 


그 누룽지는 어른들만 먹을 수 있었다.

압력 밥솥을 해서 나오는 누룽지의 양은 한정적이고, 우리 집 어른들은 꼭 밥을 먹고 누룽지를 먹어야 밥을 다 먹은 것 같이 개운하다고 하셨다. 탄수화물에 미친 민족답게 우리 집 어른들도 누룽지로 마무리를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어른들이 다 뜨고 난 후 남은 누룽지를 싹싹 긁어서 먹곤 했다. 엄마가 누룽지 먹을 사람~하고 부르면 제일 먼저 손을 들곤 했다. 고소하면서도 뜨끈한 누룽지를 딱 먹고 나면 나도 한 끼 마무리를 잘하는 기분이었고, 흔하게 먹지 못하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꿀맛이었다. 그리고 누룽지를 그냥 먹는 게 아니라 게장을 곁들여 먹는데 고소한 누룽지와 짭짤한 게장의 조합이 환상이었다.


누룽지와 먹는 특별한 게장

다들 간장게장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큰 게가 간장에 절여져 있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이 간장게장을 서른에 처음 먹어봤다. 그 마저도 비려서 몇 입 먹고 양념 게장으로 갈아탔다. 내가 평소에 집에서 먹던 게장은 정확하게는 '게장간장'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간장의 맛을 더 깊게 내기 위해서 자잘한 게들과 고추를 넣고 숙성시킨 다음에 작은 그릇에 게와 간장을 덜어 두고 그것을 찍어 먹는다. 고소한 누룽지를 한 입 먹고, 게장간장을 숟가락으로 살짝 찍으면 숟가락 끝에 간장이 묻어 나오는데 그걸 바로 먹으면 적당히 짭짤하면서도 진한 게의 풍미가 올라온다. 그렇지만 비리지 않아서 밥에 비벼먹어도 참 맛있었다. 이 게장간장을 내가 어릴 때부터 했었는데, 꼬물꼬물 살아있는 작은 게들이 힘이 좋아서 바구니를 뛰쳐나오면 어린 나는 '벌거지'가 다닌다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럼 할머니는 더 놀리고 싶어서 게를 한 마리 잡아들고 내 코에 들이밀면서 "아나~벌거지~ 아나~ 벌거지~" 하셨다. 내가 짧은 혀로 "벌거지 저리 가~"하며 우는 게 그렇게 귀여우셨는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나만 보면 그 이야기를 하셨다. 


아픈 날에도 우리 집은 누룽지를 먹었다.

유적적인 이유로 어릴 때부터 자주 편두통이 있었다. 아마 만성 편두통 환자들은 공감하겠지만, 배는 고픈데 그렇다고 뭘 계속 씹으면 씹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또 향에 예민해져서 평소에는 그렇게 좋던 김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특히 횟집만 가면 비린내가 심하게 나서 토를 하기도 했었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회도 나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즐겨 먹지 않았었다. 이렇게 토를 할 만큼 심하게 머리가 아픈 날이면 배는 안고프면 좋으련만 무심하게도 배는 고파서 뭘 먹어줘야 한다. 그럴 때마다 편두통 선배인 엄마는 누룽지를 한 그릇 크게 주셨다. 나를 위해 따로 죽을 하기에는 이미 음식 노동이 만만치 않으니 나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건 누룽지를 본인의 몫까지 주시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양 많은 누룽지가 참 좋았다.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넘어가고, 다른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았는데도 고소하고 단맛이 난다. 거기에 우리 집 특유의 게장간장을 한번 탁 찍어서 먹으면 반찬 없이도 한 끼를 채울 수 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단짠단짠의 맛을 알았던 건 아닐까.


이제는 먹기 힘든 음식이 되어 버린 누룽지와 게장간장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고모도 노화로 인한 미각 기능의 상실로 간을 잘 못 맞추신다. 더군다나 이제 우리들도 다 독립했고 예전처럼 음식을 많이 할 필요도 공 들일 필요도 없어졌다. 서울에서 그 흉내를 내고 싶어 누룽지를 사다가 물에 푹 끓여 먹어보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간장으로는 집에서 먹던 게장간장 맛이 안나 아쉬울 따름이다. 간혹 "전라도면 음식 잘하겠네~"라고 말씀하시는데 상상 이상으로 음식을 못한다. 옆에서 보고 배우지 않아 요리법은 모르는데 입맛만 비싸져서 어딜 가나 음식에 대해 100% 만족을 못한다. 특히 내가 한 음식은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차라리 그때 공부하지 말고 음식을 배웠으면 근사한 남도 식당 하나는 차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쉽고 아쉽다. 그리고 음식 하나를 만들어내는 정성을 알기에 사실 쉽게 따라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누룽지와 간장게장을 먹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추억 속에 먹던 그 맛과 북적 거리며 먹던 따뜻함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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