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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식이 May 21. 2020

2002년생들은 말할 자격이 있다.

라떼는 말이야

서른인 나에게 2002년은 월드컵이다.

2002년 하면 월드컵이 먼저 생각난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원래 살던 집이 공사를 하면서 엄청 좁은 집에 대가족이 지냈다. 중이염이 심한 탓에 고막이 녹았고, 어디선가 조직을 떼어 고막에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병실에 누워있는데 병원 가득 함성소리가 나던 기억이 생생하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 2002년 월드컵을 그린 만화도 나왔고 각 경기마다 누가 골을 넣었고 어떤 세리머니를 했는지 까지 복습했다. 


월드컵을 모르는 세대가 있다고?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가 학생들에게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애들 표정이 이상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생들이 2002년생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아니 2002년 월드컵을 모르는 애들이 학교를 들어와? 세월 빠르다."  하며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소름 돋아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또 쏜살같이 지나, 2019년 첫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 2002년생이었다. 


2002년생과 신종감염병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된 사스는 2003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다행히 우리나라 감염자는 3명 정도로 끝냈지만,  2000년대 이후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위기의 시작점이 되었다. 학교에 막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을 초등학교 1학년, 그들은 신종플루를 만났다. 내가 고등학교 때였는데, 교문에서 열을 재고 체온이 정상보다 높으면 조퇴한다고 들떠(?) 있었다. 철없이 신종플루를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때도 사망자가 260명이었다. 감염자가 10만 명 정도라 치명률은 낮은 편이지만 주 감염자 연령이 0세 ~ 19세(75%)였고, 그때 뉴스에서 어떤 연예인의 아들이 신종플루로 인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2002년생들과 그의 부모님들이 많이 마음 졸였을 것 같다.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전 국민이 그러하듯 나 또한 배가 뒤집혀 있던 모습이 생생하고 아직까지 유가족들의 슬픔은 진행 중이다.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있었고, 수학여행을 포함한 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취소됐었다.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얼떨결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된 02년생들의 서운함도 이해는 된다. 그렇게 중학교에 올라간 02년생들은 메르스를 만나게 된다. 메르스 또한 감염자가 186명 사망자가 38명이었고, 초기의 방역조치 문제와 병원감염으로 인해 문제가 되었었다. 그때 '낙타와 접촉하지 마세요', '낙타고기와 우유를 먹지 마세요'라고 쓰여있던 포스터가 붙어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비단 2002년생만 겪은 일은 아니기에 꼭 그들만 '운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옆에서 교사로 지켜본 2002년생들은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정말 운이 없다. 


2002년생은 교육부의 실험쥐?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자유학기제를 경험했고, 그들은 이때부터 수행평가와 교과 외 활동의 비중이 늘어났다. 뭐든 시행 첫 해에는 잡음이 있기 마련인데, 취지대로 잘 되는 학교도 있겠지만 진로 프로그램이 부실한 학교도 있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고등학생일 때다. 


고교 진학을 앞둔 중3, 교육부가 수능 개편시안을 발표하면서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중 어디를 가야 대학을 잘 갈지에 대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 또한 수능 개편을 유예하면서 넘어갔지만 진짜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새로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새로운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과 같은 과목이 신설되었다. 나는 '과학탐구실험'을 가르쳤었는데, 1주일에 1시간 들어있는 교양 과목이 등급이 나뉘는 바람에 학생들은 이 교양과목마저도 피 터지게 공부해야 했다. 반발이 많았던 과목이라 다음 해부터는 절대평가로 A, B, C 성적을 주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A를 받아갔다. 교양과목조차도 쉼 없이 치열하게 등급 싸움을 한 유일한 학년이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과학탐구실험'이 나중에 대학 갈 때 내신 산정에서 '과학'과목으로 합쳐지냐는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잘했는데 과학탐구실험이 조금 미끄러졌다면 과학 내신 등급이 추락하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모른다'였다. 첫 개정 교육과정을 경험하는 학년이었고 대학에서 내신 산출에 대한 지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도 대학에서 내신 산출을 확실히 공개하진 않지만 그래도 데이터가 쌓여있어 예측을 할 수 있던 이전 학년과는 다르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단군이래 처음 하는 교육과정'이라며 우리도 잘 모른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더더욱 지옥이 펼쳐졌다. 학생들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선택 과목'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거의 매시간 교과교실로 옮겨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친구들과 시간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각자의 교과교실로 들어가야 했다. 첫 일주일은 도대체 우리 반에 들어와야 하는 학생이 어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모든 교실을 헤매고 다녔다. 선택교과의 문제가 이 정도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선택과목으로 인해 각 과목을 듣는 학생이 줄었고, 상대평가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등급 싸움이 치열해졌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선택한 학생이 20명이면 20명끼리 경쟁해서 등급이 나눠졌다. 정말 1명만 1등급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부 기록이 굉장히 중요한데 여러 가지 제한을 뒀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특이라 부르는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이었고, 가장 좋은 기록은 


이 학생이 수업을 듣다가 어떤 부분에 호기심이 들어, 그 부분을 더 탐구하기 위해 스스로 실험을 설계하여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또한 이를 듣는 청중의 수준에 맞춰 시각적인 자료를 활용해 발표를 하였고, 이것을 다른 과목과 연관지어 어떤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구상해 낸 것이 인상 깊음.


 이 부분이 호기심이 들었고 '스스로' 탐구를 했으며 부족한 부분은 교과시간과 질문으로 보충했고 본인이 배운 내용을 발표나 포스터 등으로 친구들과 '공유'까지 해야 완벽했다. 그러니 수행평가의 부담과 비중도 컸고, 시험이 끝나도 학생들은 '세특'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수시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내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호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은 내신관리는 물론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했다. 관련 과목(생물, 화학 등)의 수업은 특히 더 열심히 들었으며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에서 가진 궁금증들을 바탕으로 '스스로' 실험 설계를 하여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친구들과 공유했다. 특목고, 자사고도 아니고 일반고에서 이런 결과를 내기가 참 어렵다. 기본적으로 과학실 예산도 적고 있는 기구도 별로 없어서 할 수 있는 실험의 제약이 참 많았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내신 공부와 수행평가뿐만 아니라 본인의 진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그냥 둬도 알아서 잘하지만 사실 본인의 진로도 결정 안된 학생들이 태반이다.  아직 뭘 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강요하는 기분이 들어서, 예전에 '진로교육이란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도 썼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누가 다 끝까지 볼까 싶지만, 이들의 억울함을 나라도 공감해주고 싶었다. 입시에 있어서는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02년생인데, 이제 코로나 19까지 덮쳐버렸다. 계속해서 개학이 밀리고 어떤 지역은 등교했다가 1교시만에 다시 집에갔다. 온라인 개학을 했지만 사실 얼마나 배웠을까. 오자마자 전국연합 학력평가에, 중간고사를 보면 또 바로 평가원에서 출제하는 6월 모평을 봐야 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 시기에 입시를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여름이 가장 더울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그리고 온라인 개학으로 인해 대학생들 중에서 재수, 반수 하는 학생들도 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02년생들과 그 학부모님들이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제발 입시가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입시 결과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고생했고, 앞으로 또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정말 힘내서 견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첫 제자들이 이런 힘든 상황인데 그저 우리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에 이렇게 길게 글을 썼다. 


2020 수능의 필적확인란 문구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이다.

가끔 필적확인란 문구를 보며 울컥하는 이유는 그 글을 보는 학생들이 겪었던, 겪을 일들이 공감 가서일까. 늙어서 그런 것인가.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힘내라는 말밖에 못 해서 미안하지만 그대들은 정말 다른 학년들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게 맞다.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후배들에게 꼭 '라떼는 말이야~'하며 거들먹거려도 모두가 인정할만한 힘든 시간, 어서 지나 추억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학생이 그려준 나ㅎㅎㅎㅎㅎㅎㅎ이것도 벌써 추억이다 시간 후딱지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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