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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식이 May 25. 2020

세 번째 태어난 아이, 세이

나 태어날 때 아빠는 밥 먹으러 갔다매?

아들을 기다리는 딸 부잣집. 셋째 딸이 태어나던 순간 아빠는 밥을 먹으러 갔다. 나를 받아주신 수녀님은 우는 엄마를 보고 방금 낳은 갓난아이를 주면 수양딸로 삼겠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딸도 자식인데 어떻게 남을 주냐며 감쌌지만, 할머니도 아들이었으면 더 좋아하셨을 거다. 내 다음에 나온 형제가 아들이라 할머니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았다. "니가 길을 잘 닦아놔서 아들이 나왔는갑다." 어린 마음에 나는 정말 칭찬이라 생각하고 으쓱으쓱 했다. 나를 칭찬해주는 할머니들이 좋아서 경로당도 자주 가고, 인사도 꼬박꼬박 했다.


아빠가 지어준 이름, 세이

큰 언니는 작명소, 작은언니는 절에서 돈을 주고 이름을 지어왔다. 셋째인 나는 아빠가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지어주었다. 세 번째 태어난 아이를 줄여서 세이. 나중에 만나본 다른 세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던데. 우리 아빠는 내 이름 지어준 게 아직도 그렇게 기발한지, 틈만 나면 너무 잘 지은 이름이라며 스스로 감탄하신다. 어릴 때 나는 한글 이름이라 한자를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다. 사람들이 세희나 세미로 착각할 때가 많았지만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게 득이 될 때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슈퍼히어로

무려 자식이 넷인, 그리고 할머니와 고모를 모시며 사는 엄마 아빠는 우리를 모두를 데리고 주말이면 놀러 다니셨다. 직장에 다닌 후로는 주말이면 집에서 누워있어도 힘든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항상 우리를 데리고 놀러 다녔을까? 슈퍼 히어로가 아닌 이상 납득하기가 어려운 사실이다. 또 자식이 넷이고, 아들 낳으려고 우리를 낳았다곤 하지만 모든 자식을 차별 없이 기르셨다. 아빠는 매일 새벽에 우리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고, 야자가 끝나면 데리러 오셨다. 거의 12년 이상을 기사 노릇을 한 후 아빠도 졸업할 수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이지만 우리에게 항상 결정권을 주셨다. 엄마가 방치해서 우리가 잘된 거라고 장난처럼 말하지만, 우리가 모든 일을 선택하고 항상 책임감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다른 걸 떠나서 4명의 교육을 끝까지 책임지신 것. 자식 모두가 학자금 대출 없이 졸업할 수 있었던 것. 사회에 나와보니 대출 없이 졸업하는 것도 큰 축복임을 알았다.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격체를 넷이나 키운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다.


딸아, 넌 보라색이야.

얼마 전 결혼식을 했다. 아빠는 슬퍼서(?) 나와 같이 입장하지 않겠다고 했고, 나도 아빠가 나를 남편에게 넘기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하면서 입장하기로 결정했다. 곡은 "하늘을 달리다". 남편이 먼저 1절을 부르며 입장하고, 내가 2절을 부르며 입장했다. 노래는 못하지만 박수를 유도하며 걷는 입장 길은 참 즐거웠다. 혼인서약서까지 우리 스타일대로 하니 매 순간 즐겁고 싱글벙글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아빠는 전화가 와서 뜬금없이 "너는 보라색이야"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괜히 눈물이 찔끔 나오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아빠면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 지금껏 평생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며 물심양면 나를 지원해준 아빠와의 이야기를 기록해둘까 한다. 


아빠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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