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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식이 May 29. 2020

아빠는 직업이 뭐야?

어릴 때, 학교에서 나눠준 자기소개 종이에는 아빠 직업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아빠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몰랐다. 가끔 자기소개할 때 적어내라고 하면 그때마다 아빠는 직업이 바뀌셨다. 회사원, 건축가, 사업가. 나는 아빠가 일하는 걸 본적이 없었고,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가끔 고모집을 지날 때, 저 집 아빠가 지었어 라고 해서 나는 아빠가 건축 관련 일을 하시나 보다 했다. 한창 황토집에 빠지셨고, 주말이면 황토집에서 가족끼리 쉬었기 때문에 아빠가 집을 짓는 사람인가보다 했던 것 같다. 


알고보니 아빠는 정말 직업이 매번 바뀌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아파트 같은거에 투자를 했다가 망하셨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손비누같은 사업을 했는데 시기가 안맞았는지 잘 안됐다고 했다. 고모집 설계에 참여하셨고 그 이후로는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때는 인삼밭을 하셨다. 외가가 인삼밭을 하셔서 같이 했는데 하필 딱 수확을 해야할 6년째 되는 해에 태풍 '볼라벤'덕에 큰 손해를 보셨다. 하필 그 시기에 어떤 놈이 아빠 차까지 불지르는 바람에 나는 교환학생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그리고 내가 스타벅스에서 일할 무렵 아빠도 갑자기 카페를 열겠다고 하셨고, 오픈까지 내가 많은 도움을 드렸다. 지금 그 카페는 다른분께 넘기고 사실상 무직인 상태로 지내고 계신다.


아빠는 취미부자.

도대체 아빠가 무슨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아빠는 즐거워보인다. 관심사가 금방금방 달라지긴 했지만 언제나 좋아하는 걸 즐기며 지내신다. 아빠의 취미가 정말 많지만 일단 첫번째 취미는 집짓기이다. 큰 집이아니라 황토집, 비둘기집 같이 작은 집들을 지으신다. 물론 카페도 아빠가 지었다. 나는 건축을 잘 모르지만 스스로 토대를 만들어 집을 짓는게 항상 대단해 보인다. 

아빠가 지은 카페. 지금은 다른 카페가 들어왔다.


아빠는 영어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신다. 시원스쿨이 유명하기 전부터 시원스쿨로 영어를 배우셨고, 아빠한테 영어랑 역사를 물어보면 혼자 몇시간을 떠드니까 그 부분은 금기어였다. 자꾸 어디서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을 사겨서 연락하고 카페에 초대해서 커피를 대접하곤 한다. 만약에 아빠가 서울사람이라면 이태원에 사셨을것같다. 

가끔 시간이 나면 대금을 불고 계신다. 수준급의 실력은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소리 내기도 어렵다는 대금으로 몇 곡조는 뽑아내신다. 농업에 대해서도 평생교육원 같은곳을 통해서 계속 지식을 쌓고, 부동산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는 전문가이다. 골프는 세미프로라고 하셨고, 요즘은 또 자전거에 빠지셔서 몇 시간씩 강을 달리신다. 혼자 서울에오셔서 자전거를 사갈만큼 열정이 넘친다. 추워지면 스키타는 것을 즐기셨고, 우리는 모두 아빠한테 스키를 배웠다. 선반이나 간단한 가구정도는 뚝딱 만들고, 예전에 LED 장미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혼자 만들어서 카페에 작은 LED장미길을 해두셨다. 참 아빠는 못하는게 없는 사람이다.


아빠는 든든한 방황 선배.

내가 진로에 대한 기로에 서있을 때 아빠는 항상 응원해줬다. 그러고 항상 하는 말이, "아빠도 아직 진로를 못 찾았는데 니가 어떻게 벌써 찾겠니."였다. 나는 왜이렇게 그 말이 위로가 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직 좋아하는 게 없다고 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아빠. 그리고 정말 솔선수범해서 먼저 방황해주는 아빠. 아빠도 계속 좋아하는 걸 찾는 중인데 나도 계속 도전하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이 된다. 고난을 먼저 겪은 인생 선배가 있으니, 마음이 힘들때마다 아빠에게 전화하게 된다. 번외로 골프에 빠진 엄마는 은퇴후에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 도전정신이 가득한 엄마아빠덕에 나도 한우물을 안파고 이것저것 도전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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