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1
인덕션에 낀 때를 보고 있자니 닭볶음탕을 배불리 먹겠다고 양껏 감자와 당근을 때려 넣어 결국 국물을 넘치게 만든 어제의 내가 참 한심해 보인다. 매콤한 국물이 눌어붙은 화구는 오른쪽 하단에 위치해 있는데 요리 중 오른손을 뻗어 조리 도구를 잡기도 편하고 길게 뻗은 주요 프라이팬의 손잡이 부분을 왼쪽으로 향하도록 두기 좋아서 자주 사용해 왔다. 오늘 냉털(냉장고 털이)의 혁혁한 공을 세울 볶음밥을 요리할 최적의 화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닦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식초가 없다! 그래서 주방 세제로 바로 돌진하여 닦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세제를 풀어 적신 스펀지로 화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처음에 그렇게 비장한 각오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오른쪽 하단의 화구 저편 상단의 화구의 음식자국, 왼쪽 하단 화구의 물때, 그리고 인덕션 벽면의 기름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하원시간은 고작 30분 남았는데 이 타오르는 오기는 무엇인가. 나는 갑자기 전투모드가 켜졌다. 마치 목욕탕 때밀이 테이블 위에 누운 엄마의 등을 제압하듯이 손가락 각을 살려 섬세하고 치밀한 동작부터 손바닥 면적을 이용한 대패질 동작까지. 마지막에 물을 촤악 뿌려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인덕션과 좌우 상판의 맞물림이 고르지 않아 생략했다. 거품질을 마친 뒤 행주로 닦고, 또 닦고 또. 쓱싹쓱싹은 정말 별로라고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알람이 울렸다. 나는 지금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여름 방학 동안 운동 캠프에 참여한 아들은 요새 식성이 좋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배가 고프다 한다. 서둘러 아들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빨간색 파프리카를 씻고 먹기 좋게 자를 준비를 하는데 아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조용히 곁에 있는다. 내가 칼질을 시작하는데 아들이 그런다.
쓱싹쓱싹. 파프리카에서 맛있는 소리가 나!
응? 쓱싹쓱싹이 맛있는 소리였던가?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