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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츄 May 03. 2024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할 수는 없겠어


"자기야 나 자기 많이 생각해. 아니 자기만 생각해."


해결책은 없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그날 밤 우리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날 내가 가시 돋은 말을 건넸고 그는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가 드디어 지친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곤두서 있던 내 마음이 풀어지려는 순간 그가 뒤이어 말했다.  


"우리 문제가 있어. 알잖아. 대화 주제가 없는 것도 서로 할 말이 없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지도 몰라. 우리 아직 서로를 많이 좋아하잖아. "


그 말을 듣고 내 생각보다 그가 나와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반복했던 '너를 많이 생각하고 있어' 이 말이 이렇게나 와닿은 적이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그도 고민했구나. 그리고 그 고민의 내용이 나에게 달콤하지만은 않은 거란 것도 느껴졌다. 그가 지금껏 내게 반복해 물었던 '너는 내가 왜 좋아?' 이 질문이, 맞받아친 내 질문에 '나는 자기가 예뻐서. 그리고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라는 답변이 생각났다. 그가 항상 하고 있다던 나에 대한 생각의 끝이 이제 보이고 있다고 나는 직감했다. 상처받기 싫은 내 마음과 그에게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애원하고 싶은 내 마음이 뒤섞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나는 너가 아직 너무 좋다고. 근데 나는 이 문제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노력한다고, 진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변할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날 통화 하는 내내 그가 내가 입을 다물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도록 유도하는 게 느껴졌었다.

말해봐. 얘기해 봐. 하고 기다려주던 그가 내가 이 대답을 했을 때 처음으로 할 말을 잃은 게 느껴졌다.


자기 오늘 진짜 생각이 많네?라고 그가 말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많이 달랐고, 이게 싫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공통된 걸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거 같다는 말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제안했던 커플 어플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같이 공통 질문에 답하면서 대화하는 게 도움이 될 거 같다고 했다. 그 어플 설치는 내가 하자했을 때 그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매일 꾸준히 못할 거 같아서 하기 싫다고 답해 나 혼자 상처받고 마무리된 일이었는데. 그의 입에서 다시 그 어플이 나오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그때 내 서운했던 마음과 그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게 어떤 관계일까,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뒤이었다.


그때 내가 만약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그 어플 내일부터 같이 해볼래?'라고 말했더라면 지금이랑은 달라졌을까? 나는 그날 '일단 알겠어. 우리 이제 자자. 잘 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내일 출국이었고 나도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었다. 사실은 더 얘기하고 싶었으면서 그가 먼저 전화를 끊고 싶어 할까 봐 되려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그 일이 있은지 이틀이 지난 지금 함께 한 대화랄게 두 마디가 채 되지 않아.

지금 우리 막다른 길 끝에 치달은 걸까? 모처럼 휴가를 떠난 너에게 마음의 짐을 주고 싶지 않아서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말로 포장한 마음을 보낸 나는 돌아오지 않는 너의 관심에 이미 그렇다고 생각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예전의 나는 이 유명한 구절을 두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는 상처받을까 봐 먼저 상처 주고야 마는, 손해 보기 싫어하는 계산적인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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